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가 어느날 미복차림으로 민생시찰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밤길에 야식 생각이 났지만 음식점을 찾지 못하다가 우연히 한 곳을 찾아 들어가 맛있게 먹게 됐다.
그리고는 가게 상호가 궁금해진 황제에게 가게주인이 이름이 없다하자 ‘도일처(都一处)’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시간에 문을 연 곳은 ‘수도에서 오직 이곳 뿐’이라는 뜻이었다.
이 후 이곳에는 현판을 들고있는 건륭제와 주인의 모습을 담은 그림이 걸려 있어 오는 손님들은 음식과 함께 이들에 얽힌 이야기를 즐기게 됐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를 가지고 오랜 세월 전통을 지키며 몇대에 걸쳐 영업을 해온 곳을 ‘오래된 가게’란 뜻으로 ‘노포(老鋪)’라고 하는데 한국이야 사회 여건이나 구조로 그 역사가 길지 않지만 중국이나 일본은 100-200년이나 그 이상되는 가게들도 많다.
이는 ‘노포’가 간직해온 역사만큼이나 그 이야기의 강한 힘을 갖고 있어 이런 곳을 방문하게된 각국 최고 지도자들에겐 외교의 큰 힘을 발휘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이는 같이 음식을 나눔으로써 서로의 장벽을 뛰어넘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다보니 외교, 정치적 회담에 어떤 음식이 소개되었는지에 따라 그 메뉴는 회담의 분위기를 나타내 주는 역할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해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음식이 국제 관계 발전을 위한 가장 오래된 외교 도구다’라고 말했을 정도인데 특히나 노포(老鋪)는 외교 무대에서 친근감을 표시하는 역할로 종종 등장했다.
한 예로 1972년 중·일 수교를 계기로 방중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일본 총리는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에게 ‘육필거가 아직도 있느냐’고 물었다. ‘육필거(六必居)’는 1530년 문을 연 베이징의 짱아찌와 장이나 반찬 등을 주로 만드는 식품 가게다. 말하자면 ‘육필거 안부’로 중국에 대한 관심을 은근히 나타낸 것인데 이에 저우언라이 총리는 ‘물론 있다’고 화답하고 후에 그 가게의 간판 글씨를 금색으로 바꿔주었다고 한다.
지난 16-17일 도쿄에서 열리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윤석렬 대통령을 대접한 곳 중 하나인 도쿄 긴자의 ‘렌가테이(煉瓦亭)’ 또한 128년 역사를 자랑하는 노포의 하나다.
렌가테이는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던 시기인 1895년에 창업한 가게로 돈가스와 오므라이스의 발상지라는 이야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해서 오무라이스를 좋아하는 윤대통령에게 호의를 보이기 위해 선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이 일본의 제국주의와도 무관치 않은 배경을 갖고 있다는 점으로 볼때 적절치 않아 보인다는 지적도 있었다.
렌가테이가 생긴 1895년은 동학군 진압을 빌미로 일본이 조선에 들어온 후 청일전쟁까지 일으켜 승리한 해이자 을미사변을 일으켜 조선의 명성황후를 시해한 해다.
여기에 기시다 총리의 조부는 침략 전쟁 당시 일본군 동원과 관련된 군고위 인사였으며 이곳에 처음 문을 열고 장사를 시작한 주인 또한 군징집을 받고 만주사변에 참전해 싸우다 겨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귀향하는 질곡을 겪은 피해자였다고 하니 이곳은 기시다 총리에게는 일제의 강제징용에 대해 깊이 깊이 생각해봐야 할 숙제를 상기시켜주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는 곳이 만찬장소로 된 것이 과연 우연인지 의도에 의한 것인지 하는 의구심마저 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