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천 칼럼(22) 첫사랑에 아련한 마음이 남는 건

중국의 옛 기록에 ‘동이족(東夷族)은 누에를 쳐 길쌈을 하며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동이족은 한반도 우리 민족을 말한다. 이외에도 ‘삼국지’나 ‘위지’ 등 우리 민족은 상고시대부터 여러 가지 제의(祭儀)를 열면서 음주와 가무를 즐겼다고 했다.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등 종교적 행사가 그것들이다. 
  이러한 행사와 함께 등장하는 것이 탈춤인데 조선후기에 들어와 서민층과 함께 발돋음한 한국의 탈춤은 가무와 연극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당시의 부조리한 사회 문제들을 풍자와 해학으로 표현하는 예술적 특징을 지닌다.
  주로 양반을 사정없이 능멸하거나 파계한 승려 그리고 첩으로 인한 부부간의 갈등외에도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해서 사회적 병폐나 도덕적 모순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풍자한다. 한 마디로 탈춤은 판소리와 더불어 조선 말의 민중문화를 대표하는 장르로 민중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다.
  그중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탈놀이 가면인 안동 하회탈은 유일하게 국보로도 지정돼 있다. 안동 하회탈은 10 여개 종류가 있는데 그 중 ‘이매탈’에게만 전설이 있다. ‘이매’는 선비의 하인을 말한다.
  고려 중엽 하회마을에 각종 질병이 나돌자 산신령이 나타나서 신(神)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서는 10개의

탈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단, 어느 누구도 탈을 만드는 모습을 봐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에 허씨 성을 가진 도령이 금단(禁斷)의 움막을 짓고 홀로 탈을 만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마지막 10번째 탈인 이매탈이 거의 완성될 즈음, 허 도령을 사모하던 처녀가 그를 너무나도 보고 싶은 나머지 몰래 다가가 엿보았다.
  그러자 허 도령이 피를 토하면서 즉사하는 바람에 코 아랫부분이 완성되지 못한 이매탈은 입과 턱이 없는 탈이 되었다. 도령이 죽자 그 처녀는 슬픔과 자책감에 자진하였고,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면서 탈놀이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항상 눈으로 웃는 표정만 짓고 있는 이매탈은 미완성의 탈이 되었지만 더욱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미완성과 아홉수가 어쩌면 우리네 ‘미완의 삶’과 닮았기 때문일 게다.  
  이러한 ‘미완의 아홉수’는 아마도 동서양 마찬가지인가보다. 작곡의 거장들이 교향곡 9번의 징크스에 시달렸던 걸 보자. 베토벤은 교향곡 9번 ‘합창’이 성공한 후 열 번째 작곡에 들어가 약간의 스케치만 남긴 채 유명(幽冥)을 달리했다. ‘미완성’하면 바로 떠오르는 ‘미완성 교향곡(8번)’의 슈베르트도 이 곡을 완성하지 못한 채 다음 아홉 번째를 작곡하다가 세상을 떴다. 부르크너의 이야기 또한 우릴 아프게 한다. ‘제 9번은 나의 최대 걸작이 될 것’이라며, 신(神)에게 이 작품을 끝낼 때까지 살게 해 달라고 빌었지만 불행히도 신(神)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렇듯 베토벤을 비롯해 슈베르트와 브루크너 등의 거장들이 9번 교향곡과 함께 생(生)을 마감했기 때문이었는지 구스타프 말러는 숫자 ‘9’에 대한 징크스가 무척 컸다. 해서 그는 아홉 번째 교향곡을 작곡하고 나서 표지에 제9번이라고 쓰기에 불안한 나머지 아예 다른 제목을 붙였다. 이 후 아무 일이 없자 죽음이 피해갔다고 믿은 그는 열 번째 작품에 ‘교향곡 제9번’이라고 적었다. 그리고는 열한 번째 교향곡에 착수했지만 완성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얼마 전 베토벤의 고향인 독일 본(Bonn)에서 ‘교향곡 10번’ 연주회가 열렸다. 베토벤이 열 번째 작곡에 들어간 후 유명을 달리하며 남긴 곡을 인공지능(AI)를 이용해 완성한 것이다. 애초 탄생 250주년인 지난해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일정이 늦어졌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보면 이제 멀지 않아 또 다른 미완성곡들도 인공지능 버전으로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예술작품은 미완성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더 아름답고 의미 있게 느껴질 수 있다. 작품성 자체로도 그러려니와 못 다 채워지고 남겨진 여백에 대한 대중들 나름대로 갖는 사유의 몫 때문이 아닐는지.
  그럼에도 많은 미완성곡들이 작곡가들 사후(死後) 다른 이들의 손에 의해 채워져 마무리되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되면서 더욱 환호 받는 것도 있지만 비판의 논란이 되는 것도 있다.  

  여담이지만 이런 시도와 관련되어 푸치니의 오페라 ‘트란토트’에 대해 알려진 이야기가 있다.

푸치니가 ‘투란도트’의 마지막 ‘사랑의 2중창’을 쓰던 도중 지병으로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모든 이들에게 충격적인 이 소식에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을 맡은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1년 후 다른 이에 의해 완성된 ‘투란도트’ 초연에서 토스카니니는 3막 ‘류의 죽음’ 장면까지 연주를 이어나가다가 돌연 지휘봉을 내렸다. 그리고는 청중을 향해 돌아서서 이렇게 말했다.
‘친애하는 마에스트로께서 여기까지 쓰시고는 펜을 멈추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대로 퇴장했고 연주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튼 이 역시 세상을 먼저 떠난 저들에 대한 남은 이들의 사랑과 그들이 못다 한 이야기에 대한 아쉬움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비워있는 것을 채우고 싶은 인간의 그러한 의지가 우리의 삶과 문명을 발전시켜온 원동력 아니었겠나 싶다.
  이렇듯 어차피 우리의 삶은 ‘비우기와 채우기’의 줄다리기여서 비움에서 채움으로 다시 채움에서 비움으로 거듭하면서 더 나은 완성으로 다가가는 것일 진데 어쩐지 한 쪽으로 더 치우치는 경향이 다분하다. 그러니 넘침을 경계하라는 계영배(戒盈杯)나 비움이 더 소중한 가치임을 일깨우는 것일 터.
  그런 면에서 우리네 탈춤은 이 ‘비움과 채움’으로 잘 짜인 단연 으뜸 극(劇)이다.

소리꾼이 읊어내는 대사 사이사이 비워놓은 자리에 관객이 끼어들어 채워주는 거기에 탈춤의 멋과 맛이
있고 그렇게 해서 ‘공동의 완성미’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이매탈은 비워있는 입과 턱
때문에 단절이 아닌 열림으로 더 많은 교감으로 채워질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국 다시 돌아가 우리가 무엇이든 채우고 마무리하려는 이 모든 것의 출발이 알고 보면
우리의 타고난 ‘미완성 효과’심리 때문이란다. 어떤 일을 마치지 못하고 그만두면 긴장상태가
지속돼 기억 속에 더 오랫동안 남게 되고 이 때문에 그 일로 인한 심리적 압박과 불편함으로 일을
끝내려는 경향이 생긴다는 그것 말이다.
헌데 어쩌나. 이루지 못한 목표나 놓쳐버린 기회 등 끝맺지 못한 일들이 우리에게 미련을 갖게
하는 이 ‘미완성의 효과’ 때문에 첫사랑에 아련한 마음이 남는다고 하니 밉상이긴 커녕 괜찮지
않은가 여겨지기도 하는데 과연 인공지능이 그런 것까지 해낼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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