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세기 경 메디아 공주 아미티스는 바빌론의 네브갓네살 2세와 결혼했다. 비록 정략결혼이었지만 왕은 그녀를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했는데 아미티스는 산이 많아 나무와 꽃이 풍성했던 고향과 달리 메마르고 평탄하기만한 바빌론의 삶에 지쳐 향수병을 앓았다.
그러자 왕은 그녀의 고향을 닮은 정원을 건설했는데 이것이 바로 공중정원이었다. 정원의 길이는 각 방향으로 100m가 넘고 계단식 구조의 7층이었는데 각 층 테라스에는 흙을 덮고 온갖 나무와 꽃을 심었다. 그리고 각 테라스는 돌기둥의 통로로 이어져 있었으며 내부에는 100여 개의 방과 목욕실 그리고 큰 광장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다.
헌데 당시 기술로 그 높은 건축물 위로 물을 끌어올려 수목이 가득한 정원을 유지하기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해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힌다.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이 ‘인간에게 청량제인 정원이 없다면 모든 건물은 조잡한 작품에 불과하며 우아한 시대의 사람들은 집을 짓고 정원을 잘 가꿀 것’이라고 할 만큼 정원은 자연의 품에서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이러한 정원은 역사적으로 동서양 모두 발달해왔다. 헌데 서구나 동양 특히 한중일 모두 정원을 만들면서 자연을 지배하려는 점에서는 같지만 서구가 주로 자연을 추상화하고 기하학적으로 변형해서 지배하는 반면 동양은 주로 우주질서를 따라 재현함으로써 자연과 사람의 공존을 모색했다.
그 중 일본의 정원에 대해 이여령 교수는 다음과 풀이했다. 일본말로 정원을 ‘니와(にわ: 庭)’라하는데 ‘니와도리’ 즉, 집에서 기르는 새는 닭을 말함이니 ‘니와의 새’가 사람이 가꾸는 새인 것 처럼 사람이 가꾸기 위해 뜰안으로 들여온 정원을 ‘니와의 자연’이라 해다. 즉, 일본은 주로 연못을 파고 모래나 자갈 그리고 돌을 이용해 구도를 정하는 방식으로 자연을 축소하고 간소화해 집안 뜰로 끌어들이는데 이를 소위 ‘가레이산스이 (枯山水)’라 한다 그리고는 더 나아가 방안으로까지 들여온다. 일례로 분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인위적인 거다. 이에 비해 중국은 정원을 원림 (園林)이라고 했다. 광활한 영토와 수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인 만큼 중국은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해서 작은 세상이란 의미의 ‘소천지(小天地)’를 훙내내 만든 것이 원림이다.
허나 이것 또한 자연적이어야 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인공적으로 자연을 축소해 옮겨온 것이다. 그러면 한국은 어떤가? 한국의 정원은 자연을 끌어들이되 자연을 강조하지도 않으며 훼손하지도 않은 채 물 흐르듯 순리대로 건축물과 자연을 자연스럽게 잇는다. 그러다보니 뜰과 밖의 경계인 담을 낮게하여 자연이 정원으로 들어오는 가하면 그 정원의 뜰이 확장되어 나가
자연과 어울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의 연장인 셈이다. 해서 서양인들이 창덕궁 비원을 들러보며 ‘정원이 어디 있느냐?’라며 의아해 했다는 말이 이상할리 없는 것이다.
지난 23일 영국 첼시 플라워쇼 ‘쇼 가든’ 부문에서 한국 정원이 금상을 수상했다. 200t의 바위를 올려 개울을 만들고 지리산 토종 식물 300여종을 심어 지리산 약초군락의 원시성을 재현했다고 한다. 다른 출품작들과 차별화되는 자연미에 찰스 3세 국왕이 감탄하고 출품작가와 포옹하기도 했다.
작가는 ‘식물은 인간의 손길을 원치 않고 원래 상태로 되돌려줘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기엔 한국 정원이 좋다’고 말했다고 한다. 자연과 더불어 공존해온 우리 선조들의 철학에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