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테반 파스토르는 과테말라 출신 불법체류 이민자다. 아픈 어린 아들 치료비를 벌기위해 아들과 함께 국경을 넘었다. 하지만, 얼마 못가 그는 아들과 함께 이민당국에 붙잡혔다. 아빠는 구치소에 수감됐고, 아들은 어딘지도 모를 텍사스의 한 셸터로 보내졌다.
기약 없는, 어쩌면 영영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생이별의 시작이었다. 3개월이 지나 파스토르는 강제추방 됐다. 국경을 넘을 때는 아들과 함께였지만 돌아갈 때는 혼자였다.
과테말라로 돌아간 파스토르는 아직 아들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 아들이 텍사스 어딘가에서 잘 지낼 것이라고 애써 믿는 것 외에 그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한다.
‘미스 엘’(Ms. L)이란 이름은 국경에서 이민국 관리가 붙여준 것이다. 콩고를 떠나 천신만고 끝에 지난해 11월 샌디에고 인근 멕시코 국경에 도착한 그녀는 이민국 관리에게 망명 의사를 밝혀 미국 입국을 허용 받았다. 하지만, 그녀의 고통은 미국 입국 후 시작됐다. 당국이 그녀의 7살 난 딸을 데려 가버린 것.
‘미스 엘’이 남가주의 한 구치소에서 지내는 동안 그녀의 딸은 수천마일 떨어진 시카고의 수용시설로 보내졌다. 미국에 입국하자마자 시작된 ‘미스 엘’과 딸의 생이별은 4개월이나 이어졌다. “딸을 만나게 해달라”는 그녀의 요구를 묵살하던 이민당국은 미 시민자유연맹(ACLU)이 소송을 제기하고 나서야 모녀의 상봉을 허용했다.
밀입국이나 망명 또는 난민 신청을 한 이민자를 자녀와 격리시키는 트럼프 행정부의 ‘생이별 정책’이 많은 이민자 가족에게 눈물과 고통을 강요하고 있다.
이민자들을 공포로 몰아갔던 이민단속과 DACA 폐지, 임시체류신분 프로그램(TPS) 중단 등으로 냉혹한 민낯을 보여줬던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에는 이민자 부모와 자녀 격리 정책으로 ‘잔인함’을 드러내고 있다.
‘미스 엘’의 딸이나 ‘파스토르’의 아들과 같이 체류신분 문제로 부모와 생이별한 채 부모와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민자 아동들만 1만 852명에 달하고 있다. 이민당국은 아동 인신매매를 막기 위해 DNA 검사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부모와 아동을 격리시킬 수밖에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DACA 폐지’를 지렛대 삼아 ‘이민축소법안과 국경장벽 건설’ 협상을 하려 했던 트럼프 행정부의 전력을 볼 때 이 같은 설명은 선뜻 신뢰하기 어렵다.
지난달 25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을 통해 “(이민 축소나 국경장벽 건설예산과 같은) 내가 원하는 이민정책이 의회를 통과한다면 ‘이민자 부모-자녀 격리방침’을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부모-자녀 격리’로 인한 이민자들의 고통을 협상의 지렛대로 삼고 있다는 점을 시인한 셈이다. 이민자들에 대한 ‘잔인함’이 트럼프 행정부의 ‘유일한 이민정책’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이민자의 고통을 협상무기로 활용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정책은 가학적이고 잔인하다.
<김상목 K-News LA 편집인 겸 대표기자>
♠이 글은 2018년 6월 미주 한국일보에 실렸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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