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 신화에서 오르페우스는 죽은 아내를 되찾으러 살아있는 몸으로 저승 문을 두드렸다. 그의 리라(lyre) 연주에 지옥의 신 하데스가 감동하여 아내를 데려갈 허락을 얻었다. 그러나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잊고 아내가 잘 따라오는지 보려고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아내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비록 그의 아내 구출작전은 실패했지만 오르페우스는 겁쟁이가 아니라 영웅으로 기억된다. 불가능한 곳까지 갔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영웅의 여정’이라 했다. 영웅은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극한의 경계를 넘어간다. 성공과 실패는 두 번째 문제일 뿐 ‘시도했다’는 그 자체가 첫째다. 인도의 라마야나에서 라마는 바다를 건너 스리랑카까지 원정하고, 트로이 전쟁에서 메넬라오스는 적국에 납치된 아내를 되찾기 위해 10년을 싸운다. 이렇듯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는 수천 년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왔다. 낙오된 자를 버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들.
1976년 7월, 이스라엘 특수부대는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된 인질 102명을 구하기 위해 7,000킬로미터를 날아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기습 침투했다. 작전 시간 90분만에 지휘관 한 명을 잃고 인질 전원을 귀환시켰다. 이를 군사 전문가들이 역사상 가장 완벽한 구출 작전으로 꼽는 이유는 성공률 때문만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어디든 간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후 이스라엘은 병사 단 한 명을 되찾기 위해 팔레스타인 포로 1,027명을 석방하는 협상에 서명하기도 했다.
미국의 구출 작전 역사는 오히려 실패로 점철되어 있다. 1970년 베트남 손 타이 수용소 기습 때 포로는 이미 이송된 뒤였고, 1980년 이란 인질 구출 작전은 사막에서 헬기가 충돌해 대원 8명이 전사하며 시작도 못한 채 철수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 실패들을 수치로 기억하지 않는다. 오르페우스처럼, 시도했다는 사실이 남기 때문이다. 미 육군 레인저 부대의 신조는 이렇게 명문화되어 있다. ‘나는 쓰러진 전우를 절대 적의 손에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전술 교리가 아니라 일종의 약속이다. 군인이 전장에 나갈 수 있는 것은 이 약속 위에서다. SERE(생존·탈출·저항·도주) 훈련 체계 역시 같은 이치다. 포로가 된 이후에도 국가는 반드시 데려올 것이니, 병사는 살아서 버텨내라는 것이다.
지난 주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F-15E 전투기가 적진 산악지대 상공에서 격추되었다. 조종사 2명이 비상 탈출에 성공해 은신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산악 지역을 봉쇄하고 6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페르시아만 해안에서 320킬로미터 내륙, 적진 깊숙한 곳에 두 사람이 권총 한 자루씩만 든 채 36시간을 버텼다.
미 CIA는 교란 정보를 흘렸고, 위성과 드론이 위치를 추적했다. 네이비씰 6팀을 포함한 특수부대 수백 명, 스텔스 전투기, 리퍼 드론이 동시에 투입되었다. 이란군과 교전이 벌어지고 수송기 2대가 이륙 불능 상태에 빠지자 폭파해 버리는 동시에 마침내 두 조종사는 구출되었다.
신화부터 현대의 전장까지, 수천 년을 관통하는 하나의 진실이 있다. 위대한 공동체는 구성원을 버리지 않는다. 그 믿음이 공동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7,000킬로미터를 날아간 것이나 미국이 이란 산악지대에 수백 명을 보낸 것은 단지 두세 명의 목숨 때문만이 아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구출과정에서 소대원 전부가 전사하고 라이언만 살아남는다.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여덟 명의 목숨을 잃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생명에 대해 공리주의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질타한다. 생명은 ‘8명 대 1명’ 식으로 비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 행위는 살아있는 모든 구성원에게 말한다. ‘Leave No Man Behind (너도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미국을 세계 최강 군대로 만든 것은 단지 첨단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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