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12월,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66 살의 소설가가 유고 원고 한 편만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56년 발표한 소설 ‘하늘의 뿌리’로 프랑스 최고 권위의 콩쿠르 문학상을 받았던 그의 이름은 로맹 가리.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비평가들은 그를 ‘한물간 작가’, ‘매너리즘에 빠진 기성 문인’이라며 냉소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년 후, 무명의 신예 작가 에밀 아자르가 ‘자기 앞의 생’이라는 소설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늙은 창부와 어린 아랍계 고아 소년의 그 이야기는 프랑스 전역을 울렸고 심사위원들은 망설임 없이 그해의 콩쿠르상을 이 신인에게 안겼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에밀 아자르라는 젊은 작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인터뷰를 피했고, 대신 폴 파블로비치라는 사람이 세상 앞에 나타났다. 사람들은 그가 새로운 작가로 생각했지만 그는 로맹 가리가 자신을 숨기기 위해 대신 위장시켜 인터뷰에 내보낸 먼 사촌이었을 뿐 신인 에밀 아자르는 실존 인물이 아니었던 거다.
이에 심사위원들도, 출판계도, 독자들도 모두 속았고 로맹 가리는 이미 받은 상을 다른 이름으로 한 번 더 받아낸 게 되었다. 상금은 상징적으로 단돈 10유로에 불과하지만, 그 대신 한 작가는 평생 단 한 번만 받을 수 있다는 규칙이 있는 명예로운 상, 콩쿠르. 두 번의 수상은 없다는 그 불문율이 무너진 거다.
그리고 그는 4년후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그 원고가 공개되는 순간, 프랑스 문단 전체가 뒤집혔다. 그는 남긴 원고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하나의 이름으로 갇혀버린 작가로서의 자신이 지겨웠고, 다시 태어나 새롭게 평가받고 싶었다’고. 그것은 명예에 대한 조롱이자, 동시에 한 작가가 ‘진짜 자신’으로 다시 읽히고 싶었던 처절한 갈망이었을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카데미는 그를 벌하지 못했다. 그는 이미 죽었고, 상은 이미 수여되었으며, 규칙은 그가 죽은 뒤에야 무력하게 확인되었을 뿐이었다. 이로써 로맹 가리는 지금까지도 콩쿠르상을 두 번 받은 유일한 작가로 남아 있게 됐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흘러 지난 주, 콩쿠르 아카데미는 또 한 번 ‘진짜 저자가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부딪쳤다. 이번엔 사람이 아니라 기계였다. 캐나다–아이티계 작가 텔리송 오렐리앙의 소설이 1차 후보에 올랐지만 발표 직후 정체를 알 수 없는 계정으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AI 탐지 프로그램이 이 작품 전체 중 95%가 인공지능이 생성한 가능성을 표시한 것 때문이었다.
이어 과거 표절 의혹까지 겹쳐지면서 아카데미는 결국 이 작품을 후보 명단에서 전격 제외했다. 프랑스 출판사는 그가 생성형 AI 모델이 상업적으로 등장하기 전인 2017년 소설을 쓰기 시작해 2019년에 초안을 완성했다고 반박했다. 작가 본인도 강하게 부인하며 자신을 침묵시키려는 시도라고 맞섰고, 프랑스 문단은 지금도 이 판단을 두고 갑론을박 중이다.
로맹 가리는 인간의 이름을 바꿔 심사위원의 눈을 속였다. 오렐리앙 사건은 인간의 이름 뒤에 기계가 숨어 있었는 가로 의심받았다. 반세기 전 콩쿠르상이 마주한 질문이 ‘이 사람이 정말 그 사람인가?’였다면, 지금 콩쿠르상이 마주한 질문은 ‘이 글을 정말 사람이 썼는가?’이다.
저자의 정체성을 둘러싼 문학상의 오랜 불안은 형태만 바꾸었을 뿐, 반세기를 건너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셈이다.
비평가들의 편견을 고발했던 50년 전의 희극과, 기술의 침투 앞에 인간성의 경계를 정의해야 하는 오늘날의 비극. 콩쿠르상은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이 읽고 느끼고 있는 그 감동은 과연 누구의 고뇌에서 나온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