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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 타임스케치] 노벨상은 작은 질문에서 시작됐다

미래의 혁신은 성과를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는 연구 환경에서 탄생한다

2026년 10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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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천 칼럼니스트

벌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벌집으로 돌아오더니 갑자기 춤을 추기 시작한다. 한 방향으로 몸을 흔들며 움직여가다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러자 다른 벌들이 그 주위로 몰려든다.  
  이를 본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폰 프리슈(Karl von Frisch)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걸까?’하는 의문을 품고, 먹이를 벌집에서 떨어진 곳에 두고 벌의 춤과 동료들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그러자 냄새 등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이른바 ‘8자 꼬리춤(waggle dance)‘에는 암호가 숨어 있었던 것. 몸을 흔들며 가는 직선의 각도는 태양을 기준으로 한 먹이의 방향이고, 가는 시간은 먹이까지의 거리였다.  
  그 춤을 본 벌들은 ‘저쪽으로, 이만큼 가라’는 그 정보를 읽고 정확히 그곳으로 날아갔다. 말도 냄새도 아닌 방식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동물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이 연구로 그는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런 케이스는 이 외에도 수없이 많다. 초파리도 그렇다. 초파리는 낮에 날아다니다가 밤이 되면 얌전해진다. ‘빛이 있으니 움직이고 어두우니 쉬는 것뿐일까? 그렇다면 계속 어두운 곳에 두면 어떨까?’ 그런데 초파리들은 빛이 없어도 일정한 주기로 활동과 휴식을 반복했다. 마치 몸속에 시계라도 들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50여년 전, 두 연구자가 이 수수께끼를 기발한 방법으로 플어냈다. 초파리에게 일부러 돌연변이를 일으켜 봤더니, 리듬이 이상한 녀석들이 나타났다. 19시간 주기로 움직이는 파리, 28시간 주기로 움직이는 파리, 아예 리듬이 사라진 파리까지. 모두 같은 유전자에 답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다른 연구자들이 세포 속에서 이 유전자가 작은 자동 타이머처럼 약 24시간 주기로 오르내리는 과정을 밝혀냈고 그 업적으로 201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생물은 빛을 보고 시간을 짐작하는 것이 아니라, 세포 속 분자의 규칙적인 변화로 시간을 재고 있었던 것이다.  
  이 생체시계는 우리 몸에도 있다. 수면과 각성은 물론 체온, 혈압, 호르몬, 식욕이 하루의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해서 시차 적응이 힘들고, 야간 근무가 몸에 부담이 되고, 같은 약도 먹는 시간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수 있는 이유다. ‘초파리는 왜 아침에 깨어날까?’라는 소박한 질문이 우리 일상의 건강과 이어진 거다.  

2026년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칼 다이서로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와 피터 헤게만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 교수, 게오르크 나겔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교수. 세 사람은 빛으로 신경세포 활동을 조절하는 광유전학 연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사진=노벨상 공식 X @NobelPrize)

  올해의 노벨 생리의학상 이야기도 비슷하게 시작했다. 연못의 작은 녹조류는 빛이 있는 쪽으로 헤엄친다. 눈도 뇌도 없는 생물이 어떻게 빛을 알아볼까? 이 질문을 수십 년 붙잡은 과학자들은 마침내 빛에 반응해 문이 열리는 단백질을 찾아냈다.  
  그 뒤 또 다른 과학자들이 이 단백질을 ‘뇌의 신경세포에 넣으면 어떨까? 빛만 비추면 특정 신경세포를 켜고 끌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여기서 ‘광유전학(optogenetics)‘ 라는 혁명적인 연구 방법이 탄생했다. 이제 우리는 빛으로 신경 회로를 조절하며 기억과 감정, 행동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이 길을 연 세 과학자 (Karl Deisseroth, Peter Hegemann, Georg Nagel)에게 올 2026년 노벨 생리의학상이 돌아갔다. 연못의 녹조류가 뇌과학의 지도를 바꾼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출발은 모두 ‘왜 그럴까?’라는 작고 쓸모없어 보이는 질문들이었다. 이 연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연구자 자신들도 몰랐다. 오늘의 발견은 내일 다른 연구자의 도구가 되고, 그 도구가 낳은 발견은 또 다른 연구자의 출발점이 된다. 그렇게 한 세대의 질문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사이, 서로 관계없어 보이던 지식들이 어느 순간 하나로 연결된다.  
  그러니 기초과학을 몇 년 단위의 성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게 어디에 쓰이느냐’는 질문은 응용 연구에서는 꼭 필요하겠지만, 미래의 혁신은 아무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연구, 당장은 쓸모없어 보이는 연구에서 나온다. 물론 기초과학에 투자한다고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실패하는 연구가 훨씬 많고, 성공과 실패를 처음부터 가려낼 방법도 없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성과를 내는 연구만 밀어 주는 문화가 아니라 좋은 질문을 오래 붙들고 있을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연구 환경이다. 지금 어느 연구실에서 누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대체 왜?’라고 하는 순간에 다음 노벨상이 시작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전 칼럼  [김학천 타임스케치] 콩쿠르상이 다시 묻는다 ‘진짜 작가는 누구인가’

관련기사 빛으로 뇌세포 켜고 끈다…‘광유전학’ 개척 3인, 노벨 생리의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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