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최초 사화인 무오사화(戊午士禍)는 1498년에 일어났다. ‘성종실록’을 편찬하는 실록청 당상이었던 좌찬성 이극돈(1435~1503)이 사초 더미에서 자기 비위를 기록한 사관 김일손(1464~1498)이 쓴 사초를 발견하면서 시작됐다.
전라도 관찰사 시절 이극돈이 세조 비인 정희왕후 장례 때 빈소가 있는 한양을 향해 향을 바치지 않은 데다, 기생까지 끼고 놓았다는 내용이었다. 삭제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사초를 없애야 했던 이극돈은 간신 유자광을 찾아가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커진다. 이 일은 세조가 며느리를 불렀다는 얘기, 단종비 소릉 문제 등 세조의 궁금비사까지 들춰지고, 급기야 김일손의 스승이자 사림의 상징인 김종직(1431~1492)의 ‘조의제문’까지 소환된다.
조의제문은 김종직이 중국 초나라 의제가 항우에게 죽임을 당한 걸 비유해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한 계유정난을 비판한 시다.
이 상황에 분노한 연산군이 결국 해서는 안 되는, 사초를 가져오라고 해서 직접 본다. 관련된 자들은 물론 김종직의 제자들까지 마구 잡아들여 목숨을 빼앗는다.
책 ‘조선 정적 말살사'(날)에는 폭군, 수구, 기득권을 위한 당파와 폭력의 역사가 담겼다. 조선 시대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사화(士禍)’를 다룬다.
저자는 정적 죽이기이란 흑역사를 이 시점에 소환한 이유에 대해 반복된다는 역사 법칙이 여전히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런 문제의식으로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등 4대 사화를 자세하게 들여다본다. 4대 사화의 본질은 권력을 잡은 훈구파와 이를 비판하는 사림파의 핏빛 대결이다.
저자는 사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복잡한 정치적 역학관계부터 조상과 가문, 외척, 소신, 학문, 당파, 정치적 입장, 여느 가문과 관계까지 망라해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