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최고의 팝 슈퍼스타’ 테일러 스위프트(34·Taylor Swift)가 미국 시사주간 타임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건 당연한 귀결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특히 1927년부터 선정을 시작한 타임의 ‘올해의 인물’에 엔터테인먼트 인사가 본업으로 선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또 엔터테인먼트계 인물의 단독 선정도 스위프트가 처음이다. 스위프트는 2017년 타임 ‘올해의 인물’에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촉발한 ‘침묵을 깬 사람들’ 중 한명으로 선정된 적이 있다.
스위프트는 올해 신드롬을 일으키며 팝계 역사를 바꿨다. 올해 북미에서 시작한 월드 투어 ‘디 에라스 투어’의 열풍이 근저에 깔려 있다. 스위프트가 콘서트를 여는 공연장이 위치한 지역마다 소비가 크게 늘어나면서 ‘스위프트노믹스’란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쇼적인 상업적 측면뿐 아니라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높은 완성도를 인정 받은 투어다.
특히 3시간이 훌쩍 넘는 러닝타임 동안 유지되는 스위프트의 가창력과 에너지에 팬들이 열광하고 있다. 이번 투어 6개월 전부터 트레이닝을 시작했다는 스위프트는 타임에 “매일 투어 전체 세트리스트를 러닝머신 위에서 큰 소리로 부르며 뛰었다. 빠른 곡은 빠르게 뛰고, 비교적 느린 노래는 빨리 걷기나 간단히 뛴다”고 했다.
사실 스위프트의 인기는 지난 10년 이상 꾸준히 높아졌다. 그런데 올해엔 더욱 상업적인 측면뿐 아니라 주체적인 예술성까지 조명되면서 “핵융합과 같은 에너지를 분출”(‘타임’)하는 ‘하나의 현상’이 됐다.
컨트리 스타→거짓 루머로 조롱 대상→역경 뚫은 싱어송라이터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州) 웨스트 레딩 출신인 스위프트는 태어나 12세부터 북미 인기 장르인 컨트리 음악을 시작했다. 2006년 18세의 나이에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으로 ‘컨트리계 혜성’으로 통했다. 그런데 초창기엔 화려한 외모를 지닌 백인 여성이라 주목 받는다며 음악적으로 평가절하됐다.
2008년 발표한 정규 2집 ‘피어리스(Fearless)’로 ‘그래미 어워즈’에서 당시 만 20세라는 최연소로 ‘올해의 앨범상’을 비롯해 4개 부문을 받으면서 컨트리를 넘어 팝스타에 등극한다. 이후 ‘스피크 나우’ ‘레드’ 등 잇따라 앨범이 흥행하면서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스위프트에게도 당연히 시련이 있었다. 미국 힙합 가수 예(Ye·옛 칸예 웨스트)의 몰지각한 언행으로 그와 얽힌 악연이 대표적이다.
시작은 2009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VMA)’ 시상식이었다. 스위프트가 ‘유 비롱 위드 미’로 ‘올해의 비디오상’ 여성 부문을 수상하고 소감을 말하려는 찰나 예가 무대에 난입해 난동을 부렸다. 그는 “비욘세의 ‘싱글 레이디’가 받았어야 했다”고 주장하며 시상식을 망쳤다.
이후 예는 스위프트를 성희롱한 ‘페이머스(Famous)’를 발표했다. 스위프트를 ‘비치(Bitch)’라고 칭한 무례한 노랫말을 넣었다. 스위프트가 항의하고 업계에 문제가 되자 예는 “테일러에게 미리 동의를 구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예의 아내였던 모델 킴 카다시안이 예와 스위프트가 “미리 알려줘서 고맙다”고 소통한 통화 내역을 공개하면서 스위프트는 거짓말쟁이로 몰렸다. 하지만, 통화 내역은 전부 짜깁기로 밝혀졌다. 이후 스위프트는 누명을 벗게 됐고 예와 카다시안은 궁지에 몰렸다.
하지만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스위프트는 큰 마음 고생을 해야 했다.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이들 때문에 한 때 소셜 미디어 계정을 폐쇄했다. 온라인에선 스위프트를 간사한 뱀에 비유하는 말들이 퍼져나갔다. 자신을 성추행한 라디오 DJ 데이비드 뮬러와 법정 다툼도 이어졌다.
스위프트는 정면 돌파를 택했다. 2017년 ‘평판’이라는 뜻을 지닌 정규 6집 ‘레퓨테이션(Reputation)’을 발매하고 안티에 맞섰다. 앨범의 리드 싱글 ‘룩 왓 유 메이크 미 두(Look what you make me do)’에서 “올드 테일러는 죽었다”며 자신이 새롭게 태어났음을 공표했다. 이 모든 과정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2020)에 요약돼 있다. 이건 개인 뮤지션 스위프트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한 인간이 어떻게 벗어던졌나에 대한 이야기다.
스위프트는 ‘2023 올해의 인물’ 선정 관련 타임과 인터뷰에서 “카다시안이 불법 녹음한 통화내역을 짜깁기해 저를 거짓말쟁이로 몰았을 때, 심리적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면서 “아무도 믿을 수가 없어 모든 사람들을 밀어냈다”고 돌아봤다.
스위프트의 고난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미국 연예계 거물 스쿠터 브라운과 불화도 그 중 하나다. 스위프트의 데뷔 음반 ‘테일러 스위프트’부터 ‘레퓨테이션’까지 여섯 장의 음반·음원 마스터권은 빅머신레코드가 보유하고 있다. 저작인접권 중 하나인 마스터권은 제작자의 권한이다. 스위프트는 2018년 빅머신레코드과 계약이 만료되면서 이 음반들의 마스터권을 가져오려고 했으나 무산됐다. 이후 스위프트는 이후 발매하는 음반의 마스터권을 자신이 가져가기로 하고 유니버설 뮤직 그룹(UMG)과 새로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2019년 브라운의 투자 회사 이타카 홀딩스가 스위프트가 속해 있던 빅머신레이블을 사들이면서 스위프트의 심기가 더 불편해졌다. 스위프트는 이전부터 브라운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 브라운은 2015년부터 2년 반 동안 예를 매니지먼트했다. 스위프트는 브라운이 예의 몰지각한 언행을 부채질했다고 느꼈다. 스위프트는 결국 첫 6개의 음반을 재녹음하기로 했고 이걸 테일버 버전으로 다시 내놓고 있다. 최근 발매한 ‘1989’(Taylor’s Version)와 수록곡들이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 200’과 메인 싱글차트 ‘핫100’을 휩쓰는 등 이 음반들은 원래 녹음본보다 더 흥행하고 있다.
스위프트는 타임에 “인생은 짧다. 몇 년 동안 스스로를 가두며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 시간들은 절대 다시 돌려받진 못할 것이다. 모험을 해봐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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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행형인 스위프트의 역사
스위프트의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디 에라스 투어’ 실황을 담은 영화 ‘테일러 스위프트 : 디 에라스 투어’로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지난달 ‘2023 빌보드 뮤직 어워즈'(Billboard Music Awards·BBMAs)에서 10개의 상을 차지하며 역대 해당 시상식에서 총 39개의 트로피를 안았다. 캐나다 출신 힙합 가수 드레이크와 함께 ‘BBMAs’ 역대 최다 수상자가 됐다.
또 9일 자 ‘빌보드 200’에선 현역 가수 중 처음으로 톱10에 다섯 개의 앨범을 동시에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올해 가장 많이 스트리밍 된 가수가 됐고 애플뮤직은 올해의 아티스트로 스위프트를 꼽았다.
미국 명문 하버드대 영문과 스테파니 버트 교수는 내년 봄 학기에 ‘테일러 스위프트와 그녀의 세계’라는 새로운 강좌를 연다. 먼저 스위프트 관련 강좌를 개설했던 뉴욕대는 지난해 그녀에게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스위프트는 이 대학 작년 졸업식에서 연설했다. 스위프트의 이 같은 열풍에 팬덤 스위프티(swiftie)도 재조명되고 있다. 스위프티는 최근 옥스퍼드 사전이 발표한 올해의 단어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스위프트 열풍은 내년에 아시아와 유럽으로 번진다. ‘디 에라스 투어’가 내년 2월 일본을 시작으로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거쳐 유럽으로 투어 무대를 이어간다. 아쉽게도 국내에선 열리지 않는다. 그녀가 공연할 만한 스타디움 공연장이 국내에 존재하지 않아 콘서트가 불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한동안 국내 언론들이 공연장 환경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기도 했다. 스위프트는 2011년 2월 내한한 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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