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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김 와인 스토리] 언제 열어야 가장 빛날까 … 순간의 미학

적정 시음기의 비밀: 시간이 만든 향, 그리고 와인

2025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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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크뤼 샤또 뒤크리 보까이유의 주요 빈티지

와인을 한 병 사두면 늘 고민이 따라온다.
지금 열면 너무 이른 건 아닐까, 혹은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와인의 ‘적정 시음기’ — 즉,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시점은 단순히 연식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품종, 산지, 생산자의 스타일, 가격, 그리고 보관 환경까지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보르도 : 긴 호흡을 가진 와인

보르도의 그랑크뤼급 와인은 병입 후 약 8~15년 사이 균형을 이루고, 15~30년 사이에 절정을 맞는다.
빈티지가 훌륭할수록 숙성 기간은 더 길어진다. 예를 들어 1982년과 1986년산 1등급 와인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시음 적정기에 있다.

최근 열린 샤또 뒤크리 보까이유(Château Ducru-Beaucaillou) 버티컬 시음회에서는 흥미로운 현상이 있었다.
2008년, 2009년 빈티지보다 1995년산이 오히려 더 타닌하고 젊게 느껴졌던 것.
거의 3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생생하고 구조감이 단단했다.
위대한 보르도는 나이를 먹어도 쉽게 늙지 않는다.
젊은 보르도라면 2~3시간 이상의 디캔팅을 통해 놀라운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뒤크리 보까이유 및 마담 드 보까이유 코르크. 빈티지별 변화를 보여주는 시음회의 흔적

부르고뉴: 기다림보다 순간의 미학

부르고뉴의 피노누아는 타닌이 적어 상대적으로 수명이 짧다.
빌라주급은 4~7년, 프리미에 크뤼는 8~12년이 이상적이며, 그랑크뤼급은 15년 이상도 견딜 수 있다.
숙성이 깊어질수록 붉은 과실 향은 낙엽, 버섯, 트러플 향으로 변하며 섬세한 복합미를 드러낸다.

하지만 빌라주급 와인을 너무 오래 두면 산미만 남고 과실이 사라지기도 한다.
때로는 ‘조금 이르다’ 싶은 그 순간이, 오히려 그 와인의 가장 찬란한 시점일 수도 있다.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힘과 관능의 황금기

나파밸리의 카버네 소비뇽은 병입 후 5~12년 사이가 전성기다.
풍부한 과일향과 구조감이 어우러진 시기, 그 화려함이 절정에 달한다.

Opus One, Shafer, Harlan Estate 같은 프리미엄 와인은 15년 이상 숙성도 견딜 수 있지만,
대부분의 리저브급 와인은 7~8년차 즈음이 가장 아름답다.
현재로서는 2013~2018 빈티지가 딱 그 구간에 있다.
짙은 블랙커런트, 초콜릿, 삼나무 향이 조화를 이루는 그 시점이 바로 나파의 황금기다.

뒤크리 보까이유(Château Ducru-Beaucaillou) 시음회에서 제공된 테이스팅 시트와 치즈·크래커 페어링.

화이트 와인 & 샴페인 :섬세함의 유통기한을 넘어

샤블리, 상세르, 소비뇽 블랑처럼 미네랄 중심의 화이트 와인은 3~5년 이내가 가장 이상적이다.
반면 화이트 부르고뉴는 시간이 농도와 질감을 더한다.
7~10년 숙성 후에는 벌꿀, 헤이즐넛, 건살구의 향이 피어난다.

샴페인은 바로 마셔도 무난하지만, 돔 페리뇽(Dom Pérignon)이나 크룩(Krug) 같은 프레스티지 큐베는
20년을 넘어야 진정한 시음 적정기에 이른다.
숙성된 샴페인은 호박빛과 함께 꿀, 브리오슈, 구운 견과의 향을 드러내며, 30~40년도 거뜬히 견뎌낸다.

와인의 적정기를 읽는 법

색이 탁해지고 향이 눌려 있다면 이미 정점을 지난 신호일 수 있다.
반대로 향이 또렷하고 산미가 살아 있다면 아직은 젊다.
보관 온도 또한 숙성 속도를 결정짓는다.
온도가 높으면 숙성이 빨라지고, 너무 낮으면 ‘동면기’에 들어가 향이 닫힌다.
이 시기의 와인은 디캔팅을 해도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흥미롭게도 샴페인은 예외적이다.
오랜 숙성을 전제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약간 높은 온도에서 숙성된 병이
오히려 더 넓고 깊은 향을 보여줄 때가 있다.
완벽히 보존된 와인보다, 시간의 흔적이 남은 와인이 더 풍부하게 말을 건다.

나만의 ‘적정기’를 찾는 법

와인의 적정기에는 정답이 없다.
다만, 필자가 권하는 가장 좋은 공부법은 한 케이스(12병)를 사서 2~3년마다 한 병씩 열어보는 것이다.
같은 와인이 시간 속에서 어떻게 변하는지 직접 경험하는 것만큼 훌륭한 교과서는 없다.
와인은 결국 ‘기다림의 예술’이 아니라 ‘타이밍의 예술’이다.
그 순간을 만나기 위해 오늘도 한 병의 와인이 조용히 잠들어 있다.

<제임스 김 와인 리뷰 전문가>

*** 스시뉴스에 와인 칼럼 연재를 시작한 제임스 김씨는 와인과 미식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널리 알려진 와인 리뷰 전문가다. 그는 “좋은 와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날아갑니다”라는 신념으로 전 세계 와이너리를 탐방하며 진정성 있는 리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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