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주택시장에서 집을 팔려던 집주인들이 원하는 가격에 매매가 성사되지 않자 매물을 아예 시장에서 빼버리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철회되는 매물보다 새로 올라오는 매물이 더 많고, 기존 매물이 팔리지 않고 쌓이면서 시장에 남아 있는 매물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리얼터닷컴(Realtor.com)이 최근 발표한 월간 주택시장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5월 미국 전역에서 매물 철회 건수는 전년 동월 대비 47%나 급증했다. 올 들어 5월까지 누적 철회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 늘었다.
반면, 6월 기준 미국 내 전체 매물(활성 매물)은 지난해보다 28% 늘었고, 신규 매물도 전년 대비 8.8% 증가했다. 새 매물 증가폭과 오래 팔리지 않아 쌓이는 매물량이 철회 매물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5월에는 신규 매물 100건당 13건이 철회됐는데, 이는 2024년과 2023년 봄철의 10건, 2022년의 6건에서 크게 뛴 수치지만, 여전히 새 매물이 더 많다는 의미다.
리얼터닷컴의 제이크 크리멜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과거처럼 집값 하락으로 집을 팔지 않으면 안 되는 ‘깡통주택’ 상황이 아니라, 현재 집주인들은 높은 주택 자산 가치를 기반으로 가격 협상을 거부할 여유가 있다”고 말했다.
남부·서부 중심으로 철회 늘고, 거래는 지지부진
이 같은 현상은 팬데믹 이전보다 매물이 더 늘어난 남부(South)와 서부(West) 지역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이들 지역은 매물이 크게 늘면서 집값이 정체되거나 하락세다.
특히 애리조나주 피닉스는 5월에 신규 매물 1건당 30건이 시장에서 철회돼 전국 최고치를 기록했다. 피닉스는 또 전체 매물의 34%가 가격을 내리는 등 가격 인하 사례도 전국 최고다. 이어 텍사스주 오스틴, 콜로라도주 덴버가 뒤를 이었다.
전국적으로도 가격 인하 매물 비율은 6월 기준 20.6%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포인트 올라 2016년 이후 6월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6월 전국 중간 매물가는 44만950달러로 지난해보다 0.1% 상승하며, 여전히 ‘정점 가격’ 기대감이 유지되고 있다.
메트로 지역별로는 볼티모어(+6.8%), 버지니아비치(+5.8%), 그랜드래피즈(+5%) 등이 중간 매물가 상승폭이 컸고, 신시내티(-5%), 새크라멘토(-4.8%), 마이애미(-4.7%) 등은 가장 많이 떨어졌다.
리얼터닷컴의 다니엘 헤일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시장은 매물은 많아졌지만, 집주인들은 여전히 정점 가격에 고집을 부리고 있어 매수자들이 원하는 가격에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이 얼마나 빠르게 ‘구매자 우위 시장(buyer’s market)’으로 전환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매물은 팬데믹 이후 최대… 거래는 지체, 시장에 쌓인다
한편, 철회되는 매물이 늘었음에도 팬데믹 이후 최대 수준의 매물량이 유지되고 있다. 이는 신규 매물이 계속 올라오고 기존 매물도 팔리지 않은 채 시장에 오래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6월 전국 활성 매물 건수는 100만 건을 넘기며 팬데믹 이전보다 13% 적지만 계속해서 격차를 좁히고 있다.
6월 기준 서부는 전년 대비 38%, 남부는 30% 가까이 매물이 늘었으며, 미국 50대 대도시 모두 전년 대비 매물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라스베이거스(+77.6%), 워싱턴 DC(+63.6%)가 매물 증가율이 가장 컸다.
시장에 나온 집들이 팔리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늘었다. 6월 기준 전국 중간 매물 기간은 53일로, 지난해보다 5일 늘었고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결국 시장은 ‘매물이 늘었지만 거래는 안 되고, 일부 집주인들은 매물을 철회하며 버티는’ 교착 상태에 빠졌다. 매수자 입장에서는 선택지는 많아졌지만, 적정 가격의 매물을 찾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상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