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한인 식당들이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영업시간을 단축하는 등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지만 일부 업소들에서는 직원수를 줄이거나 임금을 깎는 등 극단적으로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타운내 한 요식업소에서 10여년간 근무했다는 K씨(56)는 “풀타임 근무자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 중 하나만 택해 근무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어 “점심시간에만 일하는게 좋을 거 같다. 나이도 있으시니까 일찍 근무하고 쉬시는게 낫지 않겠느냐?”라는 조언 아닌 조언도 덧붙였다고 말했다.
고민해 보겠다고 말한 K씨는 다음 날 20대의 새 근무자에게 저녁 일 인수인계를 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항의하러 매니저를 만났지만 더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매니저는 K씨에게 “영업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 임금이 시간당 15불씩으로 조정됐다”는 말을 한 것이다.
K씨는 “PPP도 두차례나 받았고, 팬데믹 몇개월 동안 업주는 PPP를 받고, 직원들은 근무하지 않고 실업수당을 받았었는데 뭐가 힘들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한 뒤 “PPP를 두 번 다 받았다고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전화하는 것을 듣고, 보너스라도 기대했던 우리가 바보”라고 말했다.
K씨는 사표를 내고 다른 직장을 구하기 위해 구인광고를 뒤졌고, 일주일 동안 구인광고를 낸 레스토랑 등 요식업, 소매판매업소 20여곳을 돌며 인터뷰를 했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한 업소도 있었다.
K씨는 “직업을 계속 구하겠지만 젊은 사람들이 파트타임 직업 전선에 많이 들어오면서 설 자리가 서서히 없어지는 거 같다” 라고 말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남아있을 걸”이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한 요식업소에서만 10년간 일한 K씨는 시간당 21달러를 받았었다. 하지만 업주는 이번 구조조정에서 고임금(?) 근로자의 시간과 임금을 줄이고, 인력도 구할 수 있어 젊은 인력으로 세대교체도 한 것이다.
타운내 한 식당에서 30여년간 근무한 매니저 C씨는 최근 이같은 사례는 많다고 증언했다.
C씨는 “시간당 최저임금을 받던 직원들이 코로나 사태에 실업수당을 받고 지내다가 더 좋은 근로조건의 내세운 다른 직장으로 이직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우리도 구인 광고를 매일 내고 있다”고 말한 뒤 “면접을 보러오면 오히려 주인이 더 까다롭게 구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예전같으면 충분히 고용할 만한 상황인데도, 업주는 ‘나이가 맞지 않는다. 시간이 맞지 않는다’ 라던가 ‘시간당 페이를 15달러 이상을 원하더라’ 라는 말로 탈락의 이유를 설명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사람이 구해지지 않아도 장사는 돌아가니까…”라며 말끝을 흐렸다. 업주가 직원들과 구인난을 공감하는 것 같지만 정작 직원 채용에는 인색하다는 것이다.
식당내 근로자들이 코로나 사태 이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하지만 영업에는 지장이 없어 구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의 의견도 있다.
타운내 식당을 운영하는 김씨는 “우리도 매일 구인광고를 내는데 전화 연락만 오고 직접 면접오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구직에 실패한 사람들을 소개해 달라”라고 하소연 하기도 했다.
이 업소와 관련해 요식업에서 오래 일한 K씨와 C씨는 비슷한 반응을 나타냈다. 구직자들이 원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K씨는 “그 식당에서 오래일한 직원이 없다. 그러면 설명된 것 아니냐?”라고 말했고, C씨는 “근무환경이 열악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다른 식당에서 2명이 일해야 하는 것을 1명에게 시키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LA 외곽 지역에서 일하던 파트타임 근로자들이 구직을 위해 LA 안으로 유입된 사례도 많아 외곽지역의 구인난이 가중된 것으로도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외곽지역은 늘 이런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직원을 구하지 못하는 곳은 이유가 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것에도 이유가 있을 수 있다.
K씨는 오늘도 구인광고를 들쳐보면서 “기본 상식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타운내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직장이나 요식업소에서는 구인난이 심각하다고 한다고 하소연 한다“고 애써 웃어 보였다. “직원을 구하려는, 직원을 충당하려는 마음이 없는것은 아닐까?” 반문하며 자리를 떠났다.
<박성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