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소고기 업계가 한국의 ’30개월령 이상 수입금지 조치’ 재논의를 미국 행정부에 요구한 가운데 이와 관련해 우리 정부와 미국 측이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미국이 이 규정을 관세 협상에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한우농가를 중심으로 광우병 사태를 제기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압력이 농축산물까지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정부가 선제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3일 “현재까지 미국산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의 공식적인 요청은 없었고 미국 측 입장도 확인된 바 없다”며 “따라서 우리 정부는 현재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 전국소고기협회(NCBA)는 지난 11일(현지 시간) 한국이 30개월 이상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지 않는 것이 불공정 무역 관행이라며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개선을 요구했다.
농식품부 측은 이번 요구가 미국 생산자 단체 입장에서 그간 반복적으로 제기된 내용인 만큼 특별히 별도로 검토할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번 요구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세계를 대상으로 의견을 받는 내용 중 하나로 한국에 대해 30개월 월령제한에 대한 의견이 들어있을 뿐”이라며 “이미 국가별 무역장벽(NTE)보고서에서 접했던 내용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업계가 의견을 제출한 것에 대한 것 뿐이지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개선 요청을 한 사실이 전혀 없고 접수된 것도 없다”며 “별도로 무언가를 검토하거나 대응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은 없는 상태”라고 부연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월령 제한은 2008년 미국산 수입 재개 합의에 대규모 반대 시위가 일어나는 등 ‘광우병 사태’가 발생하면서 마련됐다.
당시 정부는 미국과 30개월 미만 소고기만 수입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번에 NCBA는 개월령 제한이 ‘과도기적 조치’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확대 개방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측은 “당시 ‘국민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는 (개월령 제한조치 해제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언급이 있어서 이에 대해 미국 측이 이미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않았나라고 판단한 부분”이라며 “어떤 기한을 약속했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미국산 소고기 확대 개방에 대해 한우농가도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관련 단체는 광우병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전국한우협회는 성명을 통해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는 미국이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허용’을 요구할 수 있어 현장 한우농가와 국민들은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국회와 정부는 미국 정부가 소고기 30개월령 이상 수입 허용을 요구하더라도 농민의 생존권과 국민의 건강권을 생각해서는 결코 이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나라에서 광우병(BSE)은 큰 논란이 되었고 매우 민감한 문제”라며 “미국에서 발생한 BSE가 대부분 30개월령 이상의 소에서 걸렸고 이러한 30개월령 이상의 소고기가 수입 허용된다면 미국산 소고기 자체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이 소고기 자체로 이어져 한우의 소비감소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내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관세는 내년 0%가 될 예정인만큼 개월령 폐지가 한우 농가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놨다.
한우협회는 “현재 가뜩이나 얼어붙은 민생경제로 내수시장이 무너져 있으며 한우농가의 경우 4년째 적자에 허덕이며 한계점에 내몰려 있다”며 “2022년말 8만7000호였던 농가는 2년 새 1만호가 줄었고 전체 농가의 12%가 폐업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 미국산 소고기 관세철폐에 이어 비장벽관세인 개월령까지 철폐가 요구된다면 더 이상 한우농가가 설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처럼 국회와 정부는 생산비 증가로 인한 경영악화로 폐업하는 국내 한우농가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방안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며 “만약 국회와 정부가 강행한다면 협회는 국민들과 함께 미국산 소고기 30개월령을 막기 위한 어떠한 대응도 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통상압력에 나설 수 있는 만큼 농업분야도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 측의 공식적인 입장이 나오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시나리오별 대응방안을 고민하고 다각도로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국내 농업계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어떤 상황이 있을지 모르니 다각도로 대응책을 준비 중”이라며 “태스크포스(TF)팀에서 여러 의견을 청취하면서 시나리오별로 대응 방안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