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당국이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 단속으로 한국 근로자들을 대거 구금한 사태가 발생하며 현행 미국 취업 비자 체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미국 비자 체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설득력을 얻는 만큼 이번에는 한국인 전문 비자 쿼터 신설 등 유의미한 변화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9일 재계에 따르면 현재 합법적으로 미국에서 근무할 수 있는 비자는 ‘전문직 취업 비자(H-1B)’나 ‘주재원 비자(L1·E2)’ 등이 있다. 단 이들 비자 취득은 현실적으로 조건이 복잡하다.
H-1B는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지원자를 대상으로 한다. 지원자는 최소 학사 학위 또는 전문 직종에서 이에 상응하는 경력을 보유해야 한다.
특히 H-1B 비자 발급 건수는 연간 8만5000개로 제한돼 있고 매년 3월에만 지원할 수 있다. 이중 2만여개는 미국 대학원 과정을 졸업한 외국 국적자에게 할당되는데 세계적으로 신청자 수가 50만여명에 이르는 만큼 신청자 10명 중 1명 수준으로 합격하기도 어렵다는 지적이다.
미국 법인으로 파견되는 주재원들은 대부분 E2 또는 L1 비자 중 하나를 발급받는다.
L1은 모회사, 계열사 또는 자회사로 파견되는 주재원 중 임원 혹은 관리직(A)이나 특수 지식, 기술을 가진 직원(B)이 받을 수 있다.
E2 주재원 비자는 미국 내 사업을 운영하거나 발전시키기 위해 재정을 투입한 투자사의 직원이 사업체를 직접 관리하거나 기술을 사용할 목적을 갖고 미국에 체류하기 위해 발급되는 비자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의 미국 출장은 B1 비자 또는 무비자인 전자여행허가(ESTA)를 소지한 채로 가는 경우가 관행처럼 자리잡았다.
B1은 사업파트너와 상의, 과학, 교육, 전문 또는 비즈니스 컨벤션이나 컨퍼런스 등을 목적으로 받는 비자다. 90일 이내 체류가 원칙이고 기한 연장 또는 체류 목적 변경은 제한적이다. 지난해 기준 B1 비자의 거절 확률은 27.8%로, 4명 중 1명 이상은 거절 당한 셈이다.
이에 재계에서는 한국인 전문 취업 비자를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제기해 왔다.

과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당시 한국은 미국 측에 전문직 비자(E4) 신설을 요구했지만 자국인 일자리 감소를 우려한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E4 특별비자 연 1만5000개 발급 내용을 담은 ‘한국 동반자 법안’이 지난 2013년부터 미국 의회에 계류되어 있지만 10년 이상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무역협회(무협),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등 주요 재계 단체들은 대미 투자의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비자 문제를 꼽으며 지속적인 활동을 해 왔다.
이들 단체는 ‘한국 동반자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서한을 한국 투자기업 다수 진출 지역인 조지아, 앨러배마 등과 한국 교민 다수 거주지역인 캘리포니아 등 연방 의원실에 서한을 보냈으며 의회 면담에 나서기도 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숙련된 외국인 인재의 필요성을 인정한 만큼 한국인 취업비자 신설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지금 우리나라에 배터리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다면, 우리 사람들이 복잡한 일을 할 수 있게 훈련하도록 일부 인력을 들여와야 할지도 모른다”며 “그 분야를 잘 아는 사람들을 데려와서 잠시 머물게 하고 도움을 받게 해야 한다. 그 부분을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또 “(외국 기업의) 투자를 환영한다”며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우수한 인재를 합법적으로 데려와 세계적 수준의 제품을 생산해 달라. 이를 위해 신속하고 합법적인 절차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재계 관계자는 “사실 그동안 미국 비자 문제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했던 측면이 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와 정치권 모두 비자 체계 개선에 적극 나서는 만큼 이번에는 좋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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