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세계 제조업이 집중됐던 중국에서 기업들의 이탈이 지속되고 있다. 미·중 간 갈등으로 야기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흐름 속에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추세인데다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생산비용 증가와 함께 중국의 자국우선주의에 따른 규제 강화 등이 맞물려 탈(脫)중국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4일 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의 지주사 SK㈜는 중국의 물류센터 운영기업인 ESR 케이만 리미티드(Cayman Limited)의 잔여 지분 매각을 추진 중이다.
SK는 회사 분기보고서를 통해 “ESR 케이만 리미티드의 매각을 결정하고, 잔여 지분(지분율 6.43%)에 대해 현재 매각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2011년 설립된 ESR은 물류센터를 개발, 임대·관리하는 업체다. SK가 중국 중심의 물류센터 사업에 진입하기 위해 이 회사의 지분을 매입했다가 4년 만에 매각에 나선 상황이다.
앞서 SK는 2017년 이 회사의 지분 11.77%를 3744억원에 취득했고 2018년에도 1152억원 들여 추가로 지분을 매입해 지분율을 12.52%까지 높였다. 하지만 이후 차익실현에 나서면서 지난해 지분율을 절반가량으로 줄인 데 이어 올해도 지분 매각을 발표했다.
SK가 당초 중국 물류시장에 진출하려 했다가 물류 사업 진출의 뜻을 접은 것으로 보인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그동안 지분 매각 시기를 저울질해오다가 올해 들어 소유 지분의 가치가 계속 하락하자 정리하기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최태원 회장의 ‘차이나 인사이더(China Insider)’ 전략을 앞세워 중국시장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온 SK의 중국사업은 올해 들어 분위기가 바뀌는 모습이다.
SK 중국 지주사인 SK차이나가 지난 6월 베이징 SK타워를 중국 허셰건강보험에 매각한 데 이어 지난 8월에는 중국 렌터카 사업을 일본 최대 자동차기업인 토요타에 넘겼다. SK의 중국사업 지주사인 SK차이나는 2019년 35억8100만원, 지난해 32억70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반면에 SK는 베트남 등 동남아 시장에 대한 투자를 늘리며 시장 다변화를 추진 중이다. SK는 최근 베트남 최대 식음료·유통기업인 마산그룹 산하 ‘크라운엑스(CrownX)’에 3억4000만 달러(약 4000억원)를 투자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2018년 톈진의 스마트폰 공장 가동을 중단한 데 이어 지난해 10월 중국 내 마지막 스마트폰 생산기지인 후이저우 소재공장의 가동을 중단했다. 또 가전분야에선 톈진의 TV 공장 가동을 지난해 11월 중단했으며 이에 앞서 7월에는 쑤저우의 개인용 컴퓨터(PC) 생산공장의 문을 닫았다.
현재 업체들의 성장과 경쟁 심화로 인해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이 하락하면서 수익성이 떨어지자 철수를 선택한 것이라는 판단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쑤저우에 있는 액정표시장치(LCD) 생산라인을 매각했다. 대신에 삼성은 베트남 북부 박닌성과 타이응우옌성 휴대폰 공장 및 호찌민의 TV·가전 공장을 두고 가동 중이다.
LG전자는 지난해 베이징 트윈타워를 80억 위안에 매각한 데 이어 쿤산의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부품 사업장과 톈진의 주방용 히터 부품 생산법인, 선양의 가전 유통법인 등 3곳을 청산했다. 이 가운데 쿤산 법인은 베트남 하이퐁의 생산법인으로 이전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2019년 이후 가동을 중단한 중국 베이징1공장 부지 매각을 지난 5월부터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가 베이징자동차와 합작해 2002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공장으로 연산 30만대 규모에 이르기도 했지만 2017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 여파로 수년째 판매가 줄고 공장이 노후화되면서 2019년 4월 이후 가동을 멈췄다.
이처럼 국내 기업들의 이탈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기업들 역시 탈중국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외신에 따르면 야후는 지난달 중국시장 철수를 선언하고 같은 달 1일부터 중국 본토에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도록 했다. 철수 배경으로는 중국 내 개인정보보호법 시행에 따른 부담감이 꼽히고 있다.
앞서 10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링크드인의 중국 내 서비스 중단을 발표하는가 하면 미국 게임업체 에픽게임즈도 게임규제 강화 추세에 중국시장을 포기한 사실이 전해졌다.
이 같은 추세 속에 국내 대기업들의 중국 현지 법인의 매출도 지속적으로 감소세를 띠고 있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 중 중국 내에 생산법인이 있는 113개사 320개 법인의 2016∼2020년 매출을 조사한 결과 총 매출이 지난해 103조9825억원으로 2016년 143조3916억원보다 27.5% 감소했다.
업종별로 사드 사태 영향을 받은 자동차·부품 업종에서 매출이 59.2% 줄면서 감소폭이 가장 컸고 IT전기전자 업종에서도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중국 내 스마트폰 사업 철수 영향으로 18.6%의 감소세를 보였다.
또 전경련이 매출 100대 기업 중 중국 매출 공시 30개 대기업의 대(對)중국 매출을 집계한 결과에서도 지난해 총 매출이 117조1000억원으로 2016년보다 6.9%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지난해 한국의 대중국 직접투자는 코로나19, 미국의 대중국 기술굴기 차단 조치 등에 따른 대중국 비즈니스 리스크 확대로 전년 대비 23.1%나 줄었다”며 “양국 정부 간 공식·비공식 경제협의체를 활발히 가동해 기업의 당면 중국 비즈니스 애로 해소, 한·중 FTA 서비스·투자 협상의 조속한 타결 등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