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항공사들이 러시아행 항공편을 취소하면서 태국에 관광을 온 수천 명의 러시아인들이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고 한다. 태국을 여행하던 일부 우크라이나인들도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3일 BBC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약 7000명의 러시아인 태국 관광객들이 항공편이 없어 발이 묶인 상태라고 보도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태국 푸켓에 있다고 한다.
유명 관광 국가로 알려져 있는 태국은 코로나19 여파로 1년 넘게 국경을 폐쇄, 푸켓의 경우 관광 관련 일자리 20만 개 중 절반 이상이 사라진 것으로 전해졌다. 작년부터는 입국 규제가 점차 완화됐지만, 태국 관광객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중국인들에 대해 중국 정부가 여행 통제를 지속하면서 관광객 수는 여전히 적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줄어든 중국인들의 자리를 러시아인들이 채웠고, 러시아인이 전체 외국인 관광객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게 됐다고 한다. 푸켓에는 작년 12월에만 러시아인 약 1만7000명이 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된 러시아인들은 금전적으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에 대해 서방 국가들이 경제적 제재를 가하면서 신용카드 사용이나, 현금 인출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러시아인 관광객 대부분은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는데, 한 커플만 익명을 전제로 BBC와 대화를 나눴다. 이 커플은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기소로 이어져 귀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가 침공을 시작한 지난 2월 24일 모스크바에서 푸켓으로 이동한 이 커플은 “은행에서 은행으로, ATM에서 ATM으로 이동했다”면서 “10번 중 9번은 거절당했지만 우리는 간신히 현금을 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웨스턴 유니온이나 가상화폐 같은 다른 수단도 있었지만, 갈수록 문을 닫고 있다”고 덧붙였다.
태국에 있는 소수의 우크라이나인들 상황은 더 심각하다고 한다. 금전적인 문제를 넘어 가족들이 자국에 있기 때문이다.
BBC가 태국에서 만난 우크라이나인 안톤과 알리나는 지난해 12월부터 태국 여행을 시작했고, 올해 3월 중순 키이우로 돌아갈 예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되면서 돌아갈 수 없게 됐고, 가족들은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 있지만 이들에게 가능한 한 해외에 머물 것을 권하고 있다.
알리나는 “우린 여기서 쉴 수 없고, 바다에서 수영을 즐길 수도 없다”면서 “매일 뉴스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발이 묶인 우크라이나인들은 모두 90일 간의 비자 연장 제안을 받고 있지만, 이들도 역시 금전적인 문제가 가장 큰 걱정거리라고 한다.
지역 사업체들과 지역 당국 관계자들은 이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관광객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태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관은 태국 주민들로부터 100건 이상의 무료 숙박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태국 정부는 국제 송금 앱과 현지 은행 시스템 사용 등 러시아인들이 체류비를 지불할 수 있도록 자금을 이동시킬 방법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