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시대 항일 투사들이 만주나 유럽으로 가기 위해서는 함경북도 나진을 거쳐 두만강을 건너 지나가야했던 곳이 ‘해삼위 (海蔘威)’였다. 중국 지린성에 속해 있던 이곳은 함경북도 동쪽 끝자락과 접하고 만주와 경계를 두고 있어 러시아 내륙철로를 이용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이준 열사를 비롯해 안중근 의사 등이 이곳을 거쳐 갔으며 신채호 등 독립투사들의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헌데 러시아는 군사적 경제적으로 부동항이 절실했지만 해양대국 영국에 의해 좌절되었다. 1856년 크림전쟁에서 패해 지중해로 나가는 흑해의 군항을 상실한 러시아는 영국과의 세계 패권 싸움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자 러시아가 부동항을 찾아 눈을 돌린 곳이 유라시아 대륙 맨 끝 한반도와 만주 그리고 동해에 접한 이곳 ‘해삼위’였다.
러시아는 제2차 아편전쟁 와중에 있던 청나라를 협박해 불평등 조약으로 연해주 지역을 넘겨받았다. 우리가 부르던 이 ‘해삼위’가 바로 러시아 동남단, 연해주의 주항구인 ‘블라디보스토크’다. ‘동방으로 와 정복한 곳’이란 뜻이다. 정복하기 이전에 이 땅은 고구려 영토였다가 발해의 중요한 거점 지역이 되었으며 그 후에는 여진과 거란의 땅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러시아가 이 항구를 개발할 무렵에는 인력이 모자라자 한국 유랑 이민자들에게도 널리 문호를 개방한 이유로 지금도 많은 교포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고 한다. 해서1860년대부터 한인들은 이곳에 신한촌(新韓村)을 만들었고 인근 도로는 한인 거리를 뜻하는 ‘카레이스키 스카야’로 명명됐을 정도이며 1899년 블라디보스토크 동양학 대학은 세계 최초로 한국문학과를 개설했으니 우리와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은 곳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한반도의 북단과는 직선거리로 불과 100 여 마일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이 때문에 한국 국내 여행사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 ‘인천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유럽’이라는 타이틀로 홍보하고 있다고도 한다. 아무튼 청나라에서 이곳을 빼앗은 러시아는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함대사령부 기지를 이곳에 두어 북해, 발틱, 흑해 함대와 함께 러시아 4대 해군기지를 소유하고 있다. 특히 블라디보스토크의 최대 장점은 유럽과 극동아시아를 연결하는 육로와 태평양으로 나가는 해로를 모두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겨울이면 항구는 얼어붙지만 쇄빙선으로 충분히 해로를 틀 수 있는 곳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제국의 부활을 꿈꾸며 이곳을 중심으로 태평양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헌데 최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중국에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사용권을 줬다고 한다.
이로 인해 옛 영토를 통해 동해로 진출하려는 중국의 소망이 이루어지게 된거다. 163년 만에 사용권을 돌려받은 셈이다.
이로써 중국의 국력이 러시아를 압도할 정도로 강해져 오히려 러시아가 중국의 눈치를 보게되는 상황을 보여주는 사건이 된 모양새다. 해서 일부에서는 러시아가 국력을 소진하고 이 곳에서 중국에 사실상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거다.
그렇게 되면 중국이 이 항구를 함대기지로 삼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로 한국 안보에 미칠 영향이 몹시 우려되고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