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3대 테너’로 꼽혀온 스페인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Plácido Domingo)는 400년 오페라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가수로 꼽힌다.
60년 음악 생애 동안 그가 맡아온 150여개 역할과 4,000회가 넘는 공연이 이를 잘 말해준다. 사람의 목소리는 중년을 넘으면서 차츰 변하기 시작한다. 몸이 늙어감에 따라 성대 근육도 탄력을 잃고 노화하기 때문이다. 특히 소프라노와 테너의 경우 고음 처리가 어려워 지는데 그렇다고 테너가 바리톤으로, 소프라노가 메조소프라노로 음역을 내리는 일은 거의 가능하지 않다.
그럼에도 도밍고는 테너에서 바리톤으로 그 성부를 바꾸어 활약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플라시도 도밍고가 원래 바리톤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리톤에서 테너로 음역을 넓히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끝에 성공을 이루어낸 그가 나이들면서 또 다시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에 게으르지 않았던 탓에 다시 바리톤으로 내려올 수 있었던 거다.
그리스 비극을 소재로 이탈리아에서 출발된 오페라. 수많은 불세출의 오페라 가수들이 나왔지만 그중에서도 엔리코 카루소와 마리아 칼라스를 빼 놓을 수는 없을 거다. 카루소는 고대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발성법 ‘아름답게 노래한다’는 ‘벨 칸토(Bel Canto)’를 계승, 발전시킨 전설적인 성악가로 ‘나는 배로 노래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악기의 공명감이 크려면 울림통이 커야하듯 선천적으로 큰 체구가 상대적으로 소리를 하기에 적합하다는 의미다.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는 소프라노는 무대의 꽃, 디바(Diva)다. 55세의 짧은 일기로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한 마리아 칼라스.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그에 견줄만한 이가 없다’는 뜻으로 음악계에서는 소프라노의 역사를 마리아 칼라스를 전-후로 비교해 ‘B.C.’ (Before Callas)를 쓴다. 그런 칼라스가 한때 100㎏ 넘던 체중을 30㎏ 넘게 감량한 뒤 ‘체중만 잃은 것이 아니라 목소리도 잃었다’고 한탄한 걸 보면 체구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허나 이제 성악계에선 ‘타고난 신체 조건은 더 이상 결정적인 변수가 아니다’라고 한다. 체구보다는 성대 기량을 더 중요시 여겨서다. 성대를 연마하고 여기에 근력까지 키우면 뱃심에 의지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높은 경지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3대 테너 중 한 명인 호세 카레라스가 그 대표적이다. 이제 목소리 못지않게 몸 맵시 또한 중요해진 미디어 시대가 부른 변화때문일 게다.
지난 4일 성악가 바리톤 김태한이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히는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아시아권 남성 처음으로 우승했다. 이미 기악 부문을 휩쓴 K클래식의 돌풍이 성악 분야로 확산해 세계 성악 역사를 새로 쓰는 쾌거를 이루면서 K클래식의 위상을 다시 한번 세계에 알렸다.
이는 우연이 아닌 듯 하다. 지난해 벨기에 공영방송 음악감독 로로(Thierry Loreau)가 만든 다큐멘타리 ‘K클래식 제너레이션’은 ‘한국 음악의 비밀’에 이은 두 번째 작품으로 ‘K클래식 돌풍’의 비결을 소개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동양권은 유럽과 비교했을 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어느 정도 억제돼 있는데 한국인은 훨씬 감정이 풍부하고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평했다.
해서 유럽인들 사이에서는 ‘한국인은 시칠리아인’에 비유된다고 한다. 그리고는 또 다른 키워드로 ‘자유로움’과 ‘롤모델’ ‘체계적인 영재교육’을 꼽았다. 여기에 더해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대한의 청년들은 정상으로가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고 한다. 감수성과 끈기 그리고 열정적인 한국인의 DNA를 이어받아 즐기면서 성취할 줄 아는 청년들과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음역을 넘나드는 플라시도 도밍고의 말이 귀에 머문다. ‘If I rest, I rust’ (쉬면 녹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