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회가 10일 당대표 선출에서 대의원 투표를 배제하는 내용을 담은 3차 혁신안을 발표했다.
이는 비명(비이재명)계가 반발한 사실상의 ‘대의원제 폐지’를 제안한 것이어서 당내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혁신위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의원제’ 등 정당 조직 개편과 총선 ‘공천 규칙’ 변경을 골자로 하는 3차 혁신안을 발표했다.
특히 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국대의원대회(전당대회)에서 대의원 투표를 배제하는 내용이 담겨 당내 긴장이 커지는 모습이다.
혁신위는 당대표와 최고위원 투표 반영 비율을 ‘권리당원 1인 1표 투표 70%, 국민여론조사 30%’로 변경할 것을 제안했다. 현행 민주당 당헌·당규의 전당대회 투표 반영 비율은 권리당원 40%, 대의원 30%, 여론조사 25%, 일반당원 5%다.
혁신위는 “민주당은 250만 권리당원이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큰 정당”이라며 “굉장히 짧은 시간에 당원이 급증한 상태이기 때문에 지배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그에 맞는 당조직과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간 당내에서는 전당대회에서 대의원이 행사하는 1표가 권리당원 60표에 해당해 표 등가성이 ‘당원 민주주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그러나 대의원의 권한을 줄일 경우 팬덤 정치가 강화되고 지역 대표성이 줄어든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또 전당대회와 연관되는 대의원제 개편이 현재 시점에 필요한 혁신인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국민 다수의 관심 밖인 당권에 매몰된 사안으로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혁신위는 여기서 나아가 대의원 투표 반영 비율을 축소하는 것을 넘어 대의원의 투표권을 박탈할 것을 요구했다. 그 대신 당헌·당규·정강 수정 및 결정 과정에서 대의원의 정책적 역할을 강화한다는 방침이지만 권한을 없앤 것이어서 대의원제의 실질적 폐지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대의원은 영·호남 지역의 불균형 완화를 위해 도입했다. 우리 당 역사성과 사회성을 다 내포하고 있다”며 “완전히 폐지하기보다 투표 반영 비율을 줄이는 방향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봤다.
혁신위가 화약고인 대의원제를 손질하며 계파 간 갈등은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당장 비명계 의원들은 국민 눈높이가 아닌 강성 당원들의 요구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향후 전당대회 때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딸)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조직과 공천시스템을 친명(친이재명)계에 유리하게 고치기 위한 의도라고 의심하기도 한다.
앞서 이상민 의원은 “강성 당원들, 개딸들의 요구를 그대로 반영을 하고 관철하려는 대변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명계인 이원욱 의원은 전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표 입장에서 개딸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비명계를 학살하고 싶은 탓에 혁신위 논란에 사과 표명을 안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의원제와 관련해서도 “지역안배 차원에서 도입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며 “지금은 수도권이 워낙 세졌다. 호남 출신마저도 최고위원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하는 정도가 돼버렸다. 지역안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데 당원 중심으로 간다면 앞으로 중심이 점점 강해진다”고 지적했다.
이 이원은 이날도 라디오에 출연해 “지금 대의원제가 논란이 되는 것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당화를 완성시키겠다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고 비판했다.
그는 “총선을 앞두고 대의원제를 폐지 혹은 비율을 조정한다고 ‘이야 정말 민주당이 혁신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개딸과 개딸을 등에 업고 있는 친이재명계 의원 몇몇을 제외하면 몇 명이나 있겠냐”고 성토했다.
혁신안은 당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 등을 거쳐 최종 수용 여부가 결정된다. 당이 친명계와 비명계로 쪼개져 충돌하는 양상이라 이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의 고심도 클 수밖에 없다.
일단 16일 열리는 정책의총이나, 28~29일 의원 워크숍에서 전체 토론을 진행할 것으로 점쳐진다.
대의원제·공천룰 개정과 같이 당헌·당규를 수정해야 하는 사안은 당무위원회, 중앙위원회, 전 당원 투표 등도 거치게 된다
앞서 지도부는 혁신위의 첫 쇄신안인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포기안’에 대해서도 ‘정당한 영장 청구에 대해서’라는 조건을 붙여 반발하는 의원들을 설득한 바 있다. 이번에도 지도부에서 미리 수위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한민수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최고위, 당 지도부의 진지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