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경북 안동시에서 묘지를 이장하는 과정 중에 특별해 보이는 미투리 한 켤레와 커다란 한지에 여백까지 빼곡하게 한글로 쓴 편지 한 장이 발견됐다. 1586년 6월 1일 지금의 안동시 마을에서 살던 임신한 과부가 병든 남편의 쾌유를 빌기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麻)줄기를 엮어 만들었던 미투리와 남편이 죽자 무덤에 함께 묻었던 남편 앞으로 쓴 편지였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시더니 어찌 나를 두고 먼저 가십니까?’ 로 시작한 글은 ‘당신은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나요? 여보, 함께 누우면 나는 언제나 당신께 말하곤 했지요.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어였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로 이어지는 가슴저미는 애절한 사부곡은 ‘꿈에 몰래 와서 모습을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소이다’로 끝맺는다.
이 편지는 소설과 다큐멘터리 제작 그리고 오페라로 재현되었고 국내외 많은 관광객들이 그 사본을 구할 만큼 시대를 초월해 지금도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이 사연은 내셔날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11월 호에 ‘사랑의 머리카락(Locks of Love)’라는 제목으로 미투리와 함께 편지 내용이 실려 세계인들의 심금도 울렸다.
이보다 100여 년전 이번엔 국경근처에 가 있는 한 군관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도 있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후 불과 45년 남짓한 시기 즉 530여 년 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한글편지가 지난 2011년 대전에 있는 한 선산 분묘에서 발견된 거다. 조선 초 무관 나신걸(羅臣傑)이 군관 생활을 하던 함경도에서 앞뒤를 빼곡하게 채워 아내에게 보낸 두 장의 편지다. 이는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라는 점, 특히 남성에 의해 한글로 쓰였다는 점에서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한글 사용이 상당히 이른 시기에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아울러 그 시기 한글의 변화과정과 생활상을 검증할 수 있는 학술적 사료로서의 가치도 매우 크다. 글귀마다 ‘하소’, ‘하네’로 되어있는 경어체로 아내에 대한 존중이 묻어 나오는 편지 끝에는 ‘아내에게 올립니다’로 되어 있다.
이로써 당시 양반들이 한글을 ’언문(諺文)‘으로 폄하하며 아녀자들이나 쓰는 것으로 낮춰 봤다는 일부 학설이나, 견고한 남존여비 사상의 가부장적 사회였을 거라는 우리의 인식과 차이가 있음을 짐작케 해준다.
편지는 부인에게 의복을 보내달라는 부탁과 함께 ‘집에 가 어머님이랑 아기랑 다 반가이 보고 가고자 하나 장수(將帥)가 못 가게 하시니, 못 다녀가네.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꼬. 논밭은 다 소작주고 농사짓지 말고 가래질할 때는 노비에게
도우라 하소’ 라며 농사일과 집안일을 당부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더욱이 중간에 ‘분(粉)과 바늘 여섯을 사 보내네. 어머니와 아기를 돌보며 다 잘 계시소. 내년 가을에 나오고자 하네’하는 등 멀리 변방에 나가 있는 남편이 집에 있는 아내에게 전하는 절절한 마음에 눈길이 간다. 최북방 함경도에 배치된 군관이 당시 청나라에서나 들여와야 볼 수 있는 귀한 분과 바늘을 구해서 고생하는 아내에게 보내려는 그 애틋하고 자상함이 세월을 뛰어넘어 느끼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이 편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편지’로 올 3월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됐다. 지난 9일은 한글 반포 577돌이 되는 한글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