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5일 미국에서는 올해 지구촌 최대 변수로 꼽히는 이벤트가 예정돼 있다. 미국의 47대 대통령 선거다.
누가 권좌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세계 경제와 정치 지형이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어 전세계가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연초부터 ‘대선 모드’로 들어간다. 각 당의 대선 후보를 뽑기 위한 경선이 일부 주에서는 이달 중 진행되기 때문이다.
오는 15일 아이오와주에서 가장 먼저 공화당 경선이 시작되고, 23일에는 뉴햄프셔주 경선이 예정돼 있다. 50여개 주 중 일부지만, 이들은 전체 대선의 ‘풍향계’라 불릴 만큼 향후 경선에도 영향을 미쳐 주목된다.
10여개 주에서 동시에 경선을 진행하는 ‘슈퍼 화요일(3월5일)’이 지나면 양당 최종 후보가 어느 정도 명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별 경선이 모두 끝나면 공화당은 7월에, 민주당은 8월에 전당대회를 열고 대선 후보를 확정한다.
이 모든 절차가 남았지만, 이미 2024년 대선 미국 드라마의 주요 등장인물은 어느 정도 확정됐다. 재선을 선언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백악관 탈환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각각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표 주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극적인 반전이 일어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제 3지대에서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가 판을 흔들 수 있고, 최근 공화당 내 트럼프 대항마로 급부상한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의 서사도 주목된다.
바이든·트럼프 만나면 132년 만에 전현직 대통령 대결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나선 만큼 민주당 내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큰 경쟁 없이 최종 후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공화당에는 여러 후보가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과 재대결을 벌이게 되는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맞붙을 경우 전현직 대통령 대결이 성사된다. 미국 전현직 대통령이 대선 본선에서 맞붙은 것은 1892년 벤저민 해리슨(공화당) 당시 대통령과 그로버 클리블랜드(민주당) 전 대통령이 마지막이다.
현재는 전임자가 앞서고 있는 분위기다.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이 지난해 진행된 509개 여론조사의 평균을 낸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율이 45.4%로 바이든 대통령(43.4%)보다 2%포인트 높았다. 지난해 10월 중반까지는 평균 지지율이 다소 엎치락뒤치락했으나, 이후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계속 우세다.
다만 대선까지는 10개월 이상 남은 만큼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각각 1942년, 1946년생으로 언제든지 건강 문제가 부각될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민형사 재판으로 인한 사법리스크도 변수다.
무소속 케네디, 바이든·트럼프 비호감 딛고 존재감
미국 내에선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모두에 피로감을 드러내는 유권자도 상당수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민주당 경선에 참여했다가 무소속 출마로 선회한 케네디가 높은 지지율을 이어가고 있다.
케네디는 여론조사기관 에첼론 인사이트가 지난달 발표한 조사에서 호감도 38%, 비호감도 34%를 기록했다. 바이든 대통령(42%·56%), 트럼프 전 대통령(44%·55%)과 비교하면 호감도가 4~6%포인트 낮지만, 비호감도는 20%포인트 이상 낮다.
그는 대표적인 진보 성향 정치가문 출신이면서도 백신 회의론이나 우크라이나 지원 반대 등 우파쪽에서 공감을 얻는 주장을 펴고 있어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모두에 타격을 줄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대선 가상대결 여론조사에서도 20% 안팎의 지지율을 사수 중이다. 지난달 15일 나온 하버드대 조사에서는 3자대결에서 20% 지지율을 받았고, 지난달 20일 발표된 퀴니피액대 조사에서는 22% 지지율을 기록했다. 미국 대선 역사상 제3 후보가 10% 이상을 득표한 것은 1992년 로스 패로(18.91%)가 마지막이다.
‘트럼프 대항마’로 공화당 헤일리 급부상
최근 미 대선 드라마에서 주목받는 캐릭터를 뽑으라면 공화당 후보 중 하나인 헤일리 전 대사를 빼놓을 수 없다.
출마 초반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으나 여러 차례 토론회 등을 지지율을 계속 높여나갔고 ‘트럼프 대항마’ 수식어까지 꿰찼다.
지난달에는 뉴햄프셔주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33%)보다 불과 4%포인트 뒤진 29% 지지를 얻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비록 뉴햄프셔주에 국한됐으나 공화당 후보 중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이처럼 바짝 따라붙은 것은 헤일리 전 대사가 처음이다.
헤일리 전 대사는 만 51세 인도계 여성이다. 트럼프 행정부서 주 유엔 대사를 역임했고, 출생지인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주지사로 일했다. 외교와 행정을 두루 경험했으며, 공화당 유일 여성 후보로서 장점도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억만장자 기업인인 찰스 및 데이비드 코치 형제가 설립한 미국번영을위한행동(APA)가 지지선언을 하며 자금력까지 갖췄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중도층 유권자들을 포섭하기에 유리하다는 점도 강점이다. 더힐에 따르면 헤일리 전 대사는 바이든 대통령과의 36개 양자대결 여론조사에서 3.5%포인트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바이든 대통령을 상대로는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경쟁력이 높다는 의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헤일리 전 대사를 ‘새대가리(birdbrain)’라고 칭하며 조롱해왔으나, 최근에는 부통령 후보로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다만 트럼프 측 진영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