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전쟁에는 칼보다도 날카롭고 포탄보다 더 위협적인 것이 있다. 바로 속임수다. 고대 병법서 ‘손자병법’은 ‘시계편’에서 ‘병자, 궤도야 (兵者, 詭道也)’ 즉, ‘전쟁이란 본디 속임수다’라고 정의했다. 헌데 이 병법은 놀랍게도 고대 신화로부터 오늘날의 드론 공격과 사이버전에 이르기까지 온 전장을 관통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
그리스를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10년간의 포위에도 불구하고 트로이 성을 정복하지 못하자 오디세우스는 대담한 계략을 세운다. 나무로 만든 거대한 말 속에 병사들을 숨겨 트로이성 앞에 남겨두고 군대를 철수하는 척하며 트로이인들을 속였다.
트로이인들은 이를 전리품으로 착각해 성 안으로 들이고 축제를 벌였는데 밤이 깊어지자 그 속에 숨어 있던 병사들이 나와 성문을 열어 성 밖의 다른 군사들과 함께 트로이를 무너뜨렸다. 적의 심리와 신뢰를 교묘히 이용한 기만 전술의 전형을 보여준 ‘트로이 목마’ 신화다.
지난6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본토의 공군기지 5곳을 드론으로 기습 공격해 전략폭격기 41대를 파괴했다. 우크라이나는 1년 반의 비밀 작전으로 러시아의 한창고 구조물 안에 드론 117대를 숨겨 트럭으로 러시아 내부로 운반한 뒤, 원격으로 지붕을 열고 드론을 발사했던 것이다. 러시아는 자기 땅에서 이륙한 적의 드론에 속수무책 당한 것이다. 손자병법의 ‘기만’ 원칙과 ‘트로이 목마’의 전략 그대로다.
지난해 9월, 레바논 헤즈볼라에 수천명 사상자를 안긴 이스라엘 폭탄은 10년 넘게 준비해 헤즈볼라 대원들의 삐삐와 무전기에 장착한 것이었다. ‘트로이의 삐삐’였던 셈이다.
그러더니 지난 13일, 이스라엘은 우크라이나 선례 그대로 이란을 기습공격했다. 공습은 새벽에 시작됐는데 이란 곳곳의 군사시설 인근에서 이스라엘 드론 편대가 정밀유도탄을 발사했다. 몇 달 전부터 밀반입해 은닉해 두었던 이 무기로 이란 미사일 기지를 타격해 방어와 반격을 막는 한편 핵시설, 공항, 지휘센터 등 100여 곳을 정밀 타격한 것이다. 날이 밝기 전 이란군 수뇌부와 핵과학자들 20여 명이 사망했다.
이로써 무인 무기들은 현대판 ‘트로이 목마’ 역할을 해내며 이스라엘 전투기 200여대가 이란 영공으로 자유로이 들어가게 해 주었다. 그뿐 아니라 제거된 지휘부 빈자리를 채울 다음 순번 지휘관들에겐 일제히 참수 협박 ‘메시지’가 전달됐다고 한다.
이 모든 사례는 손자병법에서 강조한 기만과 정보의 우위, 그리고 비대칭 전력의 활용이라는 공통된 전략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소수의 그리스 병사들
이 거대한 트로이를 무너뜨린 것처럼 상대적으로 저렴한 드론들이 고가의 군사 시설이나 장비에 치명적 타격을 주고. 트로이 목마가 트로이인들에게 공포와 혼란을 가져다준 것처럼 드론 공격도 언제 어디서 공격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의 심리적 효과를 만들어 준 것이다.
이 때문에 요즘 전쟁의 트렌드는 국경에서 시작하지 않는 ‘전쟁의 뉴노멀’이 생겨났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비록 기술은 발전했지만 전략의 근본 원리는 여전히 같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대의 목마가 나무였고 이 시대의 목마는 프로그래밍된 기계들일뿐 전쟁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트로이의 병사는 목마 안에 숨어 있었고,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의 드론은 창고나 적지 안에 숨어 있었으며, 오늘의 악성코드는 인터넷 어딘가에 숨어 있다.
문제는 북한도 이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적진에 군사용 드론을 반입하거나 아예 적진에서 제작해 전쟁지휘부와 주요 군사시설을 제거하는 신개념 드론 전술이 남의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