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생시민권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한 가운데, 연방대법원이 이를 전국적으로 막은 하급심 판결을 무효화하면서 출생한 지역(주)에 따라 시민권 여부가 달라지는 초유의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제 미국 내 출산 장소는 단순한 병원이 아니라, 아기의 시민권 여부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가 됐다.
2025년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체류자 혹은 영주권이 없는 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에게는 더 이상 출생 자동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뉴욕, 캘리포니아, 뉴저지 등 22개 주는 위헌 소송을 제기했고, 일부 연방법원이 효력 정지를 명령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은 27일, 이 같은 금지명령의 전국 효력을 부정하면서 “소송을 제기한 주나 원고에게만 효력이 적용된다”고 판결했다. 그 결과, 금지명령이 내려지지 않은 주에서는 해당 행정명령이 30일 후부터 시행될 수 있다.
즉, 캘리포니아, 뉴욕, 워싱턴, 메릴랜드, 메사추세츠 등 소송에 참여한 22개 주에서는 여전히 출생시민권이 자동 부여되지만, 텍사스, 플로리다, 조지아, 앨라배마, 아이다호 등 보수 성향 주에서는 시민권이 거부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병원 옮겨야 하나? “시민권 위한 주 이동” 논의도
이런 상황에서, 출산 예정인 이민자 가정 사이에서는 ‘어느 주에서 낳아야 시민권을 받을 수 있는가’가 현실적인 고민이 되고 있다. 특히 불법체류자나 합법 체류를 마치고 신분이 불안정해진 이들은 출산 병원 선택에 있어 ‘법적 안전지대’인 주로의 이동을 고려하고 있다.
이미 일부 이민 커뮤니티에서는 “출산을 위해 캘리포니아, 뉴욕 등 소송 승소 주로 옮기자”는 정보가 돌고 있으며, 일부 산부인과에는 “주민이 아닌 산모들의 예약 문의”가 증가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시민권 로또”가 된 미국…법적 혼란 심화
헌법 제14조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관할권 내에 있는 자는 시민”이라 규정하고 있고, 1898년 대법원 판례인 Wong Kim Ark 사건 이후 태어난 장소만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는 ‘속지주의’는 미국의 핵심 원칙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결정은 이를 직접 뒤집지는 않았지만, 행정명령의 지역적 차등 시행을 허용하면서 사실상 ‘시민권 로또’ 시대를 열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소수의견에서 “신생아들이 어느 주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시민권을 갖기도 하고 무국적자가 되기도 하는 시대가 왔다”며 강한 우려를 표했다.
미국에서 아이를 낳으려는 부모라면…
현재 기준으로 출생 즉시 시민권이 보장되는 주는 다음과 같다:
캘리포니아, 뉴욕, 뉴저지, 워싱턴, 메릴랜드, 일리노이, 매사추세츠, 미시간, 오리건, 콜로라도, 하와이, 노스캐롤라이나
(그 외 공동 소송 참여 주 포함, 총 22개 주)
반면 다음과 같은 주에서는 출생시민권이 제한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추후 신분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텍사스, 플로리다, 조지아, 앨라배마, 사우스캐롤라이나, 오클라호마, 네브래스카, 아칸소, 노스다코타, 아이다호
(기타 소송 미참여 주)
미국 시민권, 더 이상 보장된 권리가 아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인해 출생시민권이 미국 헌법과 대법원 판례로 보장된 권리라는 통념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지금 미국에서는 “어디에서 태어났는가”가 법적 시민 여부를 결정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는 단순히 행정명령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상 시민권의 의미 자체를 흔드는 변화다.
출산을 앞둔 이민 가정들은 이제, 미국 시민권을 위해 지도 위에서 주 경계를 넘는 선택을 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