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 반도체주가 21일 일제히 급락했다. 전날 밤 미국 반도체주가 AI(인공지능) 거품 우려로 급락한 흐름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다.
글로벌 1·2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오전 장중 각각 최대 6%, 10%까지 밀리며 전날 상승분을 대부분 반납했다. 이에 한국 코스피 지수는 4% 가까이 하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 반도체주 급락은 엔비디아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이 전날 장 초반 상승했다가 장 막판 급락한 흐름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며 “엔비디아의 견조한 실적 발표로 잠시 살아났던 투자심리가 다시 AI 거품 우려로 뒤집혔다”고 전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고 있다.
이날 대만 자취안 지수도 3.4% 하락했다. 대만의 반도체 제조사 TSMC와 폭스콘 등 대형 기술주는 4% 넘게 떨어지며 지수 하락을 이끌었다.
싱가포르 메이뱅크증권의 타렉 호르차니는 “TSMC 등 주요 전자업체들은 글로벌 AI 수요 재평가 흐름과 공급망 재고 증가로 데이터센터 투자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며 약세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일본에서는 기술주 매도세가 엔저 변동성 확대와 겹치며 충격이 더 크게 나타났다. 이날 소프트뱅크그룹과 애드반테스트는 10% 넘게 폭락하며 닛케이 평균을 2% 이상 끌어내렸다.
홍콩에서도 중국 반도체 업체인 SMIC(중국반도체제조)와 화홍반도체가 5% 이상 하락했다.
AI 관련 종목의 밸류에이션이 지나치게 높아졌다는 우려가 계속 커지고 있다. 특히 기업들의 공격적인 AI 투자 계획이 이어지면서 이러한 부담이 더 부각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최근 월간 설문에서는 기관투자자의 45%가 ‘AI 거품’을 최대 테일리스크(tail risk, 발생 확률은 극히 낮지만 발생 시 손실이 매우 큰 위험)로 지목했다. BofA는 “AI 투자 규모와 조달 방식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과잉 투자’에 대한 걱정이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기술기업들은 향후 수년간 AI 데이터센터에 수조 달러를 투입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실제 AI가 어느 정도의 수익을 가져올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설문에 따르면 투자자의 53%는 이미 AI 종목이 거품 상태에 진입했다고 보고 있다.
호르차니는 “아시아 시장은 글로벌 AI 밸류에이션 우려와 지역별 요인이 동시에 작용했다”며 “엔비디아를 포함한 미국 기술주의 급반전으로 투자자들이 AI 투자가 단기 실적에 얼마나 기여할지 다시 평가하게 됐고, 반도체 비중이 큰 한국과 대만 시장이 직접 타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부 메모리칩 고객사들이 중국산 DRAM으로 공급선을 다변화하고 있다는 보고가 나오면서, 한국 업체들의 가격 협상력이 정점에 달했다는 우려가 커졌고, 이에 따라 코스피에서 외국인 매도세가 강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