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은 남미 마라카이보 호수 위의 원주민 마을을 보고 베네치아를 떠올리며 ‘작은 베네치아’라 불렀다.
300년 뒤 이곳에서 귀족으로 태어난 시몬 볼리바르는 특권 대신 해방투쟁을 택하고 남미 전역을 누볐다. 그는 통일의 꿈을 품었지만 나라가 갈라지며 좌절했고, 후대는 그의 이름을 따 ‘볼리바르 공화국’을 세웠다. 다시 100년 후, 마라카이보 호수 주변에서 솟구친 검은 액체를 본 사람들은 놀라 외쳤다. ‘물이 불타고 있다!’ — 석유였다.
이 후 ‘석유의 나라’로 번영했으나, 손쉬운 달러는 다른 산업을 말려 버렸다. 농업과 제조업이 붕괴하고 경제는 오직 석유에만 의존했다.
정치인들은 미래 대신 수익을 나눠 주며 인기에 기대었고 축복은 점차 저주로 바뀌었다.
같은 시기, 상처 입은 아이들에게 악기를 쥐여 준 오케스트라 운동, ‘엘 시스테마(El Sistema)’가 태어났다. 이 음악은 단지 기술 습득의 대상이 아니라 존엄을 회복하는 언어이자 공동체를 다시 잇는 약속이었다. 그 속에서 한 소년이 자라났다.
오늘날 세계무대에 선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 그의 지휘봉은 이곳이 석유만의 나라가 아니라 꿈을 연주할 수 있는 나라임을 세계에 알렸다. 그리고 이 실험은 전 세계 청소년 프로그램으로 확산되면서 세계적인 음악교육 운동이 되었다. 이곳이 바로 ‘작은 베네치아’라는 뜻의 베네수엘라, 정식 국호로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이다.
1998년 우고 차베스가 ‘21세기 사회주의’를 내세워 집권하며 볼리바르의 이름을 빌려 ‘볼리바르 혁명’을 선언했다. 초기에는 고유가(高油價) 덕에 복지는 확대됐지만, 독재와 포퓰리즘 속에서 제도는 무너지고 석유 의존 경제는 붕괴했다.
그가 죽고 마두로가 권력을 이어받자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시작되었고 한때 최고 부국이었던 나라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기 시작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스페인보다 높았고, 수도 카라카스의 쇼핑몰은 마이애미보다 화려했으며 유럽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민을 왔던 나라 베네수엘라. ‘물에서 불이 나는 액체’, 석유로 낙원으로 만드는 듯 보였지만 그 낙원에서 사람들은 쓰레기를 뒤지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이렇게 한때 부국이었던 나라가 굶주림과 탈출 행렬, 마약과 범죄와 혼란으로 추락하게 되더니 급기야 대통령이 지난 3일 미국에 의해 체포 구금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의 진짜 자원이 석유가 아니라 사람임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국가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고, 자원의 저주, 제도 파괴, 포퓰리즘, 부패가 겹치면서 참사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면서 엘 시스테마 출신 음악가들은 전 세계 오케스트라로, 그리고 다른 분야의 인재들 또한 전 세계로 흩어졌다.
노르웨이가 석유로 세계 최대 국부펀드를 만든 반면, 베네수엘라는 같은 자원으로 파국을 만든 그 차이는 제도와 비전이었다. 볼리바르가 꿈꾸었던 나라는, 그의 이름을 빌린 권력자들에 의해 악몽이 된 것이다.
물 위에 세운 아름다운 나라가 불로 쓰러지고 그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일찌기 태평성세를 누리던 당나라 현종은 말년에 ‘이제는 즐겨도 된다’며 재정을 풀자 ‘오늘의 풍악은 인기를 얻겠으나, 내일의 세금은 원망을 부를 것입니다’ 라고 한 충신의 간언은 묵살되었다. 결국 재정이 비어 가던 끝에 안사의 난이 터졌고, ‘어제의 음악은 사라지고 오늘의 피로 대가를 치른다’는 말만 남았다.
이 모두가 ‘오늘의 환호가 내일의 파산이 되지 않도록 정치는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