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일랜드 서부의 한 소도시에서 과거 교회가 운영한 시설에 수용됐던 영유아 796명이 사망 후 무연고 상태로 폐하수처리조에 집단 매장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13일(현지시각) BBC와 CNN 등 외신에 따르면 아일랜드 골웨이주 툼에 위치했던 ‘세인트메리 수녀원(St Mary’s Mother and Baby Home)’ 터에서 본격적인 유해 발굴 작업이 시작됐다. 이곳은 1925년부터 1961년까지 강간 등의 이유로 미혼모가 된 여성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해 출산하게 한 뒤 아이들을 해외 입양 보내거나 분리 수용하던 가톨릭 수녀회 운영 시설이었다.
아일랜드 정부 조사에 따르면 해당 시설에서 35년간 총 796명의 영유아가 사망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정식 묘지가 아닌 보호소 인근 폐하수처리조였던 놀이터 잔디밭에 비공식적으로 매장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 관리인은 “1970년대 두 소년이 놀이터 부근에서 놀다가 콘크리트 조각 아래에서 유골을 발견했고 이를 지역 당국에 알렸지만 별다른 조치 없이 덮였다”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해당 사실은 2014년 한 역사학자 캐서린 코슬리스의 추적 끝에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그는 수녀원 아이들의 출생·사망 기록을 확인해 그들의 이름을 인근 묘지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밝혀냈고, 이후 2017년 정부의 예비 발굴 결과 실제로 해당 부지에서 영유아의 유해가 다량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조사 과정에서 수녀원의 많은 아이들이 질병과 영양실조로 사망했고, 일부는 미혼모의 자녀라는 이유로 ‘선천성 저능아(congenital idiot)’라는 낙인이 찍혀 제대로 된 진료조차 받지 못한 사실도 드러났다.
정부는 이 사건을 ‘국가적 비극’으로 규정하고 생존자와 유가족에 대한 공식 사과와 함께 보상 기금을 마련할 것이라 밝혔다.
해당 시설을 운영했던 가톨릭 수녀회 본세쿨 측도 “기독교 정신에 부합하지 못했다”며 사과하고 유해 발굴 작업과 피해자 지원에 약 1550만 유로(약 230억 원)를 기부하기로 했다.
이번 유해 발굴 작업은 2년간 진행될 예정이며, 수습 작업 총괄자는 “영아의 대퇴골은 성인 손가락만 할 정도로 작아 수습과 신원 확인이 까다롭다”며 “가능한 많은 유해를 신중하게 수습해 신원을 밝혀낼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