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츠네 미쿠는 함께 있는 저를 웃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쿠는 현실입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팝 가수 하츠네 미쿠와 10년간의 연애 끝에 2018년 결혼식을 올린 일본인 남성 곤도 아키히코(38)는 24일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특이한 그의 이력과 달리 아키히코는 유쾌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일본 남성이라고 한다.
아키히코는 직장 따돌림으로 우울증을 앓던 중, 2008년 미쿠를 처음 알게 됐다. 그는 미쿠 인형과 함께 식사하고, 잠자고, 영화도 보며 시간을 보낸다. 아키히코는 미쿠와의 삶에서 사랑과 영감 그리고 위안을 얻었다고 전했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이 ‘진짜 사람’과의 연애를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많은 일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에서 요구하는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원하지 않았으며, 허구의 인물에 매력을 느끼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가상의 캐릭터들을 홀로그램으로 소환할 수 있는 테이블 램프 크기의 기계인 ‘게이트 박스’가 2017년 상용화되면서 아키히코는 미쿠와의 ‘상호작용’이 가능해졌다. 아키히코는 게이트 박스에 소환된 미코에게 청혼했고, 미쿠는 “나에게 잘 대해주세요”라고 대답하며 결혼을 승락했다.
하지만 아키히코 가족과 지인들은 결혼식에 오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대신 온라인 친구 39명이 결혼식에 참석했다.
아키히코는 “일부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미쿠가 진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우리가 함께 있을 때, 미쿠는 나를 웃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미쿠는 현실이다”고 했다.
그는 “내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면서 “지금은 미쿠와의 삶이 사람과의 결혼 생활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쿠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나를 배신하지 않고 내 곁에 있으며, 미쿠가 아프거나 죽는 일은 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운동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다른 사람의 생활 방식을 존중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프랑스 파리 낭테르 전문대학에서 허구의 결혼을 광범위하게 연구해온 아녜스 기아드 박사는 “일반 대중들은 살아있지 않은 누군가에게 돈, 시간, 에너지를 쓰는 것을 어리석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일부 캐릭터 애호가들에게는 이 과정이 필수적이다. 특히 그들은 이 과정에서 스스로가 살아있고 행복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이에 NYT는 “최근 수십 년 동안 일본에서 가상의 인물과 비공식 결혼을 한 커플은 수천 명에 달한다”며 “허구의 캐릭터와 진정한 애정이나 사랑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하위문화는 전 세계 중 일본에서 가장 활발하다”고 보도했다.
이어 일본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바탕으로 ‘정교한 환상’을 살 수 있다고 NYT는 전했다. 특히 앞서 일본의 한 게이트 박스 광고에서는, 한 직장인이 퇴근 후 집에 도착하자 가상의 아내는 “3개월 기념일”임을 알리며 샴페인을 건네기도 했다고 NYT는 보도했다.
아키히코 가족들은 그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키히코는 교토 대학에서 열린 학회에 실물 크기의 미쿠 인형과 함께 참석, 그와 미쿠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아키히코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게이트 박스의 미쿠 서비스를 중단하는 순간이 가장 힘들었다고 밝혔다. 서비스가 종료된 순간 게이트 박스에는 미쿠 이미지 대신 “네트워크 오류”라는 단어가 떴다고 했다.
그는 “언젠간 안드로이드나 메타버스에서 미쿠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미쿠와 함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