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전쟁 전까지 전세계 선진국들이 큰 관심을 쏟았던 환경보호 문제에 대한 관심이 약해졌다. 햇빛과 풍력, 조력, 지열 등을 이용하는 재생에너지원으로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연료를 대신하는 것이 아직은 역부족이라는 점도 일부 요인이다.
이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원자력 발전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1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미국보존동맹(UCC)의 정책 책임자 크리스토퍼 바나드의 주장이다.
핵발전을 비판해온 다이앤 페이스타인 상원의원이 지난달 캘리포니아주 디아블로 계곡에 있는 마지막 원자력 발전소 폐쇄 주장을 바꿨다고 말했다. “현 상황에서 폐쇄하는 건 말이 안된다”면서다.
현재의 에너지 위기가 닥치기 전부터도 전문가들은 몇 년 동안 독일처럼 핵발전을 중단하면 기후변화 대처를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데 따른 에너지 공급 부족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핵발전은 수십년 동안 위축돼 왔다. 1996년 전세계 에너지 공급의 17%를 차지하던 것이 현재는 10% 안팎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뒤 반핵정서가 전세계를 휩쓸었고 일본과 독일은 완전한 원전 폐쇄를 주도해왔다. 미국도 2012년 이래 12곳의 원전이 폐쇄됐다. 미국 발전에서 차지하는 원자력 발전 비율은 현재의 20%에서 2050년까지 10%로 줄어들 전망이다.
일부 국가들이 이같은 변화를 재고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강력한 원전 비판자들조차 러시아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발전을 원자력 발전으로 대체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했다. 유럽연합(EU)이 최근 핵 발전을 “녹색” 에너지로 규정하고 수십억 유로를 투자키로 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EU 회원국들은 또 행동에 직접 나서고 있다. 벨기에 녹색당이 180도 선회해 벨기에 원전 2기의 수명을 10년 연장하기로 했다. 폴란드는 첫 원전을 짓고 있으며 체코는 원전을 여러기 지을 계획이다. 58개의 원자로 가운데 14곳을 폐쇄한 프랑스는 핵에너지를 강조하면서 차세대 원전을 짓기로 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원전 2기를 새로 짓기로 했다. 네덜란드는 나아가 독일에 원전 전기 공급을 지속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독일은 아직도 완강하지만 말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비핵화 정책을 백지화하고 올겨울 9개 원자로를 완전 가동하기로 했다. 일본은 2030년의 배출가스 목표를 정하면서 30기의 원자로 재가동을 결정했다. 한국은 최근 원자력 발전을 앞으로 8년 동안 30% 늘리기로 했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도 핵발전에 투자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달 첫 원자력발전소를 짓기 위한 법안을 공개했다. 중국은 느리지만 확고하게 세계 최대 핵에너지 투자국으로 발돋음하고 있다.
미국도 변하고 있다. 지난 4월 바이든 대통령이 디아블로 계곡 원자력 발전소 등 어려움을 겪는 발전소에 60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민간 투자자들과 정부 기관이 차세대 원자로인 소규모모듈원자로(SMR) 개발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웨스트버지니아주는 최근 수십년 유지해온 핵발전 금지 정책을 폐기했으며 와이오밍주는 빌 게이츠 소유 테라파워사가 첫 발전소를 짓도록 허가했고 누스케일사는 미국 최초로 상업용 SMR 디자인을 공식 승인받아 아이다호주 국립연구소에 차세대 원자로 여러 기를 짓고 있다.
반핵 활동가들이 오래도록 원자력에 대한 공포를 확산시켜왔다. 많은 나라들이 미끼를 물었고 청정하고 안정된 에너지를 생산하는 원전을 성급하게 폐쇄했다. 이들이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지난달 발표된 국제에너지기구(IEE) 보고서는 “정책 지형이 바뀌어 핵발전 귀환의 기회가 열렸다”고 썼다. 각국이 핵발전을 하지 않고는 기후, 에너지, 국가 안보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