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엔 푸른피가 흐른다”
LA 다저스의 전감독, 다저스 얼굴, 다저스 할아버지, 다저스 전감독 토미 라소다가 93세 일기로 타계했다.
다저스는 즉각 성명을 발표하고 애도를 표했고, 전국의 모든 스포츠 구단이 일제히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다저스는 라소다 사망 소식을 전하며 구단관계 모든 로고를 그의 등번호 2번으로 바꾸었다.
지난 2020년 다저스가 32년만에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 텍사스의 글로브 라이프 필드에도 고령의 나이에도 관중석에서 다저스 우승을 지켜보기도 한 토미 라소다.
다저스 우승을 지켜보고 나서 였을까? 다저스 우승 후 11월 심장 질환이 악화돼 오렌지카운티 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두달 정도 특별치료를 받다가 상태가 호전돼 퇴원한 지 이틀만에 결국 세상을 떠났다.
토미 라소다는 고령임에도 다저스 행사에는 빠짐없이 함께했고, 거의 매 경기 다저스 포수 뒤 관중석에는 라소다가 앉아 경기를 직관했다. 팬들의 사진과 사인 요청에도 흔쾌히 응했지만 서있는 시간이 힘들어 지면서 횟수나 시간을 줄이기는 했다.
구단 홍보 대사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던 라소다를 이제는 덕아웃에서 관중석에서 라커룸에서 볼 수 없게 됐다.
토미 라소다…
라소다는 1954년 8월 4일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하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1960년 다저스는 라소다를 방출하고, 샌디 쿠팩스(그 전설의 왼손투수 샌디 쿠팩스)를 영입했다.
이후에 라소다는 1961년 다저스 스카우터, 1966년 부터 1972년까지 다저스 산하 마이너리그 감독, 1973년 부터 메이저리그 다저스 3루코치로 승격돼 팔을 빙빙 돌리며 선수와 함께 뛰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리고 결국 1976년부터 다저스 감독이 됐다.
라소다 감독은 1976년부터 1996년까지 다저스를 이끌며 두차례 월드시리즈 우승(1981년 1988년)을 일궈냈다. 통산 1,599승 1,439패를 기록했고, 1996년 심장질환으로 시즌 도중이었던 6월 29일 은퇴했다. 그리고 라소다는 이듬해 1997년 명예의 전당에 감독으로 헌액되기도 했다.
그 해 다저스는 라소다의 등번호 2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고, 다저타운은 ‘토미 라소다 레인(Tommy Lasorda Lane)’으로 명명되기도 했다.
라소다는 한국, 일본야구와도 특별하다. 노모 히데오의 메이저리그 데뷔를 이끌었고, 대학생 투수 박찬호를 미국으로 데려가 양아버지를 자처하며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적응을 돕기도 했다.
다저스에서 데뷔한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몬트리올로 트레이드 한 것 등은 오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감독시절 선발 투수가 부진하자 홧김에 마운드를 올랐지만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는 선수는 없었다. 결국 라소다는 마운드에 올라가 시간을 끌었고, 주심이 마운드에 올라가 빨리 투수를 교체하던지 내려가던지 하라고 제촉하자 특유의 넉살로 “누구로 교체하면 좋겠소?” 라고 오히려 되물었던 에피소드도 유명하다. 이후 계속 시간을 끌며 불펜투수가 연습할 시간을 벌기도 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미국 야구 대표팀 감독으로 나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2001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는 3루 코치로 나섰다가 블라드미르 게레로의 타격 때 부러진 방망이에 가슴을 맞기도 했다. 이후 배리 본즈가 라소다용 가슴 보호대를 선물하기도 했다.
<이준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