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61세의 나이로 강도에 의해 피살됐다.
농구명문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교 진학을 결정한 웨스트 포사이드 하이스쿨에 재학중인 그 할아버지의 손자는 사망소식을 듣고 충격을 이기지 못했다.
그리고 나선 고등학교 경기에서 그는 61득점을 올리고 자유투를 얻었다. 그는 자유투를 일부러 어이없이 던져놓고, 감독에게 교체해 달라고 요청하고 벤치로 들어가는 그에게 기립박수가 쏟아졌고, 동료의 품에 안긴 그는 그제서야 펑펑 울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할아버지의 나이인 딱 61득점만 올리고 벤치로 돌아간 것이었다.
역대 고등학생 최다 득점인 67득점에 도전해도 충분히 깰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가능했던 2가지 선택 중 하나를 선택했다.
할아버지의 나이인 61득점을 올리고 할아버지를 기릴 것인가 고등학생 최다 득점 기록을 깨고 할아버지를 기릴 것인가. 그는 첫번째 옵션을 선택했다. 벤치로 들어가 이후 경기에 나서지 않았다.
그는 CP3, 크리스 폴이다.
그렇게 슬픔을 안고 농구 명문 웨이크 포레스트에 입학한 폴은 가드로서 성장하며 왼손 오른손을 자유자재로 쓰는 몇 안되는 농구 선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폴의 할아버지는 생전에 농구 선수는 왼손도 쓸 줄 알아야 한다며 저녁 식탁에서 폴의 오른손을 아예 의자에 묶어 버리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렇게 왼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폴은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 1학년때에는 평균 득점, 평균 어시스트 등 이 학교 1학년 기록을 모두 갈아 치웠다.
그래도 명문대이기는 하지만 웨이크 포레스트가 NCAA에서 우승하기는 어려워 보이자 2학년을 마치고 결국 프로의 길을 택했다.
이미 많은 팀에서 폴을 노리고 있었고, 1라운드 전체 4순위로 뉴얼리언스 호네츠에 입단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뉴올리언스에 크리스 폴이라는 전사가 나타났다며 지역 주민 상당수가 이재민이 된 상황에서도 폴의 입단을 반겼다.
폴은 뉴올리언스에서 NBA를 대표하는 가드로 성장했고, 2008년부터는 NBA 선수노조도 맡으면서 선수들에게서도 신뢰를 받았다.
뉴올리언스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았지만 뉴올리언스도 역시 우승할 전력이 되지 않았고, 결국 2011년 우여곡절(NBA 사무국 까지 나서서 말렸던 트레이드)끝에 LA 클리퍼스로 이적했다.
클리퍼스는 블레이크 그리핀과 디 안드레 조던 과 함께 폴을 영입해 우승을 노렸고, 이 계획은 정규시즌에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특히 두 장신 그리핀과 조던을 이용한 폴의 기가막힌 고공 패스가 림에 내리 꽂히는 장면이 한 경기에서도 수도없이 반복되자 농구 팬들은 열광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조련사 폴의 인기와 가치도 수직상승했다.
하지만 감독복이 없는 폴은 클리퍼스에서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시리즈 전적에서 늘 앞서있으면서도 역전패 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플레이오프 탈락과 관련해 폴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가 부진하면 그대로 패배로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클리퍼스에서도 최고의 대우를 받았던 폴은 이후 저니맨 생활이 시작됐다. 휴스턴 로키츠로 이적했고, 오클라호마시티 선더로 이적하며 NBA 데뷔 15년차를 그렇게 흘려 보내고 있었다.
올해 나이 36세의 폴은 은퇴시기를 논하기에 전혀 어색하지 않은 나이였고, NBA를 대표하는 선수였지만 폴 역시 많은 선수들처럼 우승반지 없이 은퇴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 중 한명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마지막 선택을 앞둔 폴은 2020-2021 시즌을 앞두고 여러 팀으로 부터 계약 제안을 받았다. 클리퍼스는 물론, 우승권에 근접한 많은 팀들이 우승 반지를 미끼로 폴을 유혹했다. ‘너만 오면 우리는 우승할 수 있다. 선수와 코칭 스태프 등 모든게 갖춰져 있다’ 이런 식이었다.
많은 전문가들과 농구팬들의 예상을 뒤엎고 폴은 만년 꼴찌팀이었던 피닉스 선스를 선택했다.
수 년간 꼴찌를 하면서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를 통해 얻은 유망주 들이 성장세를 보였지만 우승 전력은 아니다. 이를 놓고 폴은 “성장 가능성이 큰 선수들이 많다. 그들과 함께 농구하고 싶다”라고 말하며 선스를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과 농구 전문 기자들은 <우승반지 욕심보다는 후배양성>이라는 분위기의 기사를 쏟아냈다.
피닉스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겠지만 레이커스나 클리퍼스 그리고 유타 재즈나 덴버 너기츠의 벽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다. 폴은 그저 피닉스에서 후배 선수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왼손 사용법을 전수해 주며, 어떻게 상대 선수를 자극해 멘붕에 빠뜨리는지(폴은 ‘트래쉬 토커’로도 유명하다)를 전수하며 마지막 농구의 황혼기를 보낼 것으로 예상했다.
그랬던 그가, 36세의 농구 노장인 크리스 폴이, 플레이오프 기간 코로나 19 양성으로 격리까지 겪었던 그가, 그런 폴이 지금 NBA 파이널 무대에서 뛰고 있다. 심지어 1,2차전을 승리로 이끌고, 3차전(7월 11일)을 준비하고 있다.
다 가졌지만(스포츠 선수들이 모델로 나서는 일이 극히 드문 광고계에서도 폴은 얼굴을 내비치고 있다) 우승반지만 없는 크리스 폴이 2020-2021 시즌 결국 우승반지를 손에 넣을 수 있을지 이번 NBA 파이널은 크리스 폴과 반지 원정대의 활약을 주목하고 있다.
<이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