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당국자들이 전시 계엄으로 연기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총선과 대선을 내년에 실시하도록 우크라이나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4일) 보도했다.
유럽의회 이사회의 네덜란드 대표 티티 콕스가 처음 제기한 선거 실시 필요성에 미국의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 등이 지난달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면서 적극 동조했다.
그밖에 폭스 뉴스 진행자 출신으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선거를 취소했다고 잘못 비판해온 보수 인사 터커 칼슨도 비판자중 한 사람이다. 우크라이나 헌법은 계엄 중에 선거를 실시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들과 선거 전문가들, 민주주의 지지자들은 전시에 선거를 실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우크라이나 영토 5분의 1 가량이 러시아군이 점령하고 수백 만 명의 우크라이나 국민이 해외로 피신한 상태여서 유권자들의 표심을 제대로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수십 만 명의 군인들도 최전선에서 전투하느라 투표권을 행사하기가 불가능하다.
이런 여건에도 불구하고 선거 실시 압박이 나오는 것은 일부 서방 국가들에서 우크라이나가 민주주의 국가임을 입증하라는 요구가 줄곧 제기돼온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2002~2005년 오렌지 혁명과 2013~2014년 마이단 혁명 등 두 차례 민주화 봉기 과정을 거친 나라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전시 선거 실시를 위해 넘어야 할 재정적, 법적 장애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일부 당국자들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하면서 러시아 비밀정보국이 개입해 우크라이나를 내부에서 붕괴시키려 할 것이라고도 지적한다.
우크라이나 정보국의 한 당국자는 “전쟁 중 민주적 선거를 실시할 여건이 전혀 못된다. 매우 위험하며 나라에 해롭고 정치적으로 무의미하다. 우크라이나의 정치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그러나 서방의 정치적 지지가 약해질 것을 우려해 공개적으로 선거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지 못한다.
율리아 티모셴코 전 우크라이나 총리는 전쟁 중 선거로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주의 사회의 자연스러운 현상인 분열이 국가 단결을 해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전투중인 군인이 투표하기가 어렵고 전쟁 중 투표소를 찾아가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음을 지적했다.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이 투표를 못한다”는 것이다. 또 700만 명에 달하는 난민들이 해외에 있다면서 그들 대부분이 투표를 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레이엄 상원의원의 방문 뒤 가진 인터뷰에서 “선거를 외상으로 치를 순 없다”면서 선거 비용으로 1억3500만 달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전선의 군인들과 700만 해외 피난민들이 투표하도록 하기 위한 비용이라고 했다. 서방이 참호에 설치될 투표소에 선거감시인을 보내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자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을 공약해온 비벡 라마스와미 미 공화당 대선 후보가 1억3500만 달러를 갈취하려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지난달 계엄 기간을 11월까지로 90일 연장했다. 이에 따라 의회 선거는 10월말 이전에 실시할 수 없게 됐다.
우크라이나가 선거를 실시하려면 헌법을 개정하거나 계엄령이 해제돼야 한다. 또 계엄령 해제 기간이 최소 2~3개월은 돼야 한다. 선거법상 선거공고일로부터 투표일까지 후보자 유세를 보장하도록 규정돼 있는 기간이다.
앤토니 블링컨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이달초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우크라이나 각계 인사 및 정보의 선거 반대 여론을 청취했다. 이와 관련 익명의 미 정부 당국자는 선거를 실시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다는데 공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우크라이나 의원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선거 실시 압박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에서 주로 나온다고 지적했다.
티모셴코 전 우크라이나 총리는 젤렌스키 대통령과 의견이 다른 대목이 많지만 선거 실시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