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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거리낌 없이 가문 사업 확장에 나서면서 수십 년 동안 미국 정계가 지켜온 이해충돌 기준을 무시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백악관 집무실에 프로 골프 업계 중요 인물들을 모아 회의했다. 미 프로골프협회(PGA) 최고 경영자인 제이 모나한,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원하는 LIV 골프 리그의 야시르 알-루마얀 회장 등이다. 알-루마얀 회장은 화상으로 참석했다.
회의는 경쟁 관계인 두 단체의 합병을 지연시켜온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열린 것이라고 공표됐다.
그러나 합병은 트럼프 가문의 경제적 이익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다.
트럼프 가문은 LIV 골프의 사업 파트너다. 트럼프 소유 골프장에서 LIV 대회를 여러 차례 개최했고 오는 4월에도 마이애미의 트럼프 내셔널 도랄 골프장에서 4년 연속 대회가 열린다.
”나라 구하는 자는 어떤 법도 위반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과 소셜미디어 게시글,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이 윤리 기준을 위반했다는 주장을 일축하고, 비판자들을 정치적 반대 세력이라고 공격해왔다.
그는 지난 8일 소셜 미디어에 “나라를 구하는 자는 어떤 법도 위반하지 않는다”고 썼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했던 말로 알려진 표현이지만 미국의 민주주의 원칙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미국 헌법은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간의 견제와 균형으로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앨런 로젠스타인 미네소타대 교수는 “의회가 무기력하면 기본적 도덕성과 국가에 대한 충성의 자질이 없는 대통령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가문이 다양한 사업 활동을 펴기에 역대 어떤 미 대통령보다 많은 이해충돌 위험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전 트럼프 가문이 설립한 암호화폐 회사가 약 1억 달러의 수수료 수익을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가 암호화폐 산업 규제를 완화하는 행정명령을 준비하던 때였다.
세계 최고 부자인 일론 머스크에게 정부 기관의 인사 결정을 감독하는 역할을 맡긴 일도 문제가 된다. 머스크 소유 기업들이 연방 정부의 조사를 받고 있으며, 동시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정부 계약을 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트럼프는 자신의 변호사 에드워드 R. 마틴 주니어를 워싱턴 연방검사장에 임명했다. 마틴은 임명 직후 자신이 변호했던 형사 재판 피고인 기소를 취하했다.
즉시 마틴이 변호사 윤리강령을 위반했다는 소송이 제기됐으나 트럼프가 17일 마틴을 해당 직위에 정식으로 지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윤리 전문가들은 이들 모두 기존의 정부 윤리 규범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감시 체계 해체
윤리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대통령 취임 직후 정부 내 윤리 감독 체계를 빠르게 해체한 것을 우려한다.
트럼프는 연방 기관의 비리를 감시하는 감찰관 20명을 해임했으며, 공직 부패를 조사하는 특별검사와 정부윤리국장을 해고했고 해고가 위법이라는 판결이 나오자 즉시 대법원에 상고했다.
지난 11월 상원에서 5년 임기의 정부 윤리국장 인준을 통과해 취임했다가 이달 초 트럼프가 해임한 데이비드 후이테마는 “이들이 정부 내 감시 및 책임 기관을 완전히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또 성추문 입막음 시도 사건 뉴욕 재판에서 자신을 변호했던 에밀 보브를 법무부 부차관 대행으로 임명했다.
대통령 특권
미국에서 연방 공무원이 가족이 직접 관련돼 있는 사업 거래와 관련된 논의에 참여하는 것은 형사 범죄에 해당한다. 특히 경제적 이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그렇다.
미 대통령은 가족의 이해관계와 직접 관련된 행위를 금지하는 이해충돌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들은 이를 지켜왔다.
백악관에서 프로 골프 관련 회의를 주재한 것이 이해충돌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된다.
알-루마얀 LIV 골프 회장은 9250억 달러(약 1335조 원) 규모의 사우디 국부펀드 총재며 이 펀드가 트럼프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설립한 사모펀드에 투자하고 있다.
알-루마얀은 지난 2022년 뉴저지 소재 트럼프 가문 소유 베드민스터 골프클럽에서 LIV 대회를 개최하면서 트럼프와 처음 만난 뒤 계속 연락해왔다. 지난해 11월에는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UFC 경기를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관람하기도 했다.
미국, 유럽, 중동 지역에 15개의 골프장을 보유한 트럼프 가문은 골프 대회를 유치하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2021년 1월6일 의회 폭동 뒤 PGA가 베드민스터 골프장에서 열린 예정이던 대회를 취소하면서 타격을 입었다.
애덤스 뉴욕 시장도 트럼프 가문의 골프 사업 및 사우디아라비아와 관련이 있다.
트럼프 가문의 사업을 총괄하는 아들 에릭 트럼프에 따르면, 2022년 사우디아라비아 후원 골프 대회를 취소하도록 뉴욕 시의회가 압박했으나 애덤스 시장이 거부했다. 트럼프 가문이 임대해 운영하는 뉴욕시 소유 페리 포인트 골프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대회였다.
이후 애덤스 시장과 트럼프 가문의 관계가 깊어졌고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 전에도 플로리다 트럼프 저택에서 에릭 트럼프와 함께 트럼프를 만나기도 했다.
에릭 트럼프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트럼프 가문의 사업을 방해하던 빌 드 블라지오 전 뉴욕시장과 달리 애덤스 시장은 항상 우리를 지지해 줬다“고 말했다. 그는 애덤스 시장의 부패 혐의 기소에 대해서도 큰 죄가 아닌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자 보브 법무부 부차관 대행이 애덤스 시장에 대한 기소를 취하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항의하는 법무부 공공청렴부 검사들이 잇따라 사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