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60여년만에 처음으로 예비군 동원령을 발표하면서, 핵무기 사용 가능성까지 언급해 주목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서방과의 전면전으로 확대되면서 푸틴이 핵버튼까지 누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 가능해지고 있다.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주요국 고위 인사들이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며 “그런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게 러시아가 다양한 파괴 수단을 갖고 있고, 몇몇 경우에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보다 더 현대화 된 무기를 보유 중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영토 보전이 위협받을 때, 우리는 당연히 우리 영토와 자국민 보호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며 “이것은 허세(엄포)가 아니다. 핵무기로 우리를 협박하려는 자들은 상황이 (핵무기 사용 방향성이) 그들에게 향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러한 경고성 발언은 우크라이나와 전략을 물밑에서 논의해오고 있는 미국을 향한 강한 문제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최근 정보자산 공유와 함께 우크라이나의 하르키우 반격 작전을 이끌어 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대한 경고 메시지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 18일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미 CBS 방송 ’60분’과의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궁지에 몰려 전술핵이나 생화학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없느냐’는 질문에 “(핵무기 사용은) 절대 안된다”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없었던 형태로 전쟁의 국면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앞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도 크렘린궁 차원에서 조건부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 역시 우크라이나 침공 한 달만인 지난 3월 국제사회의 제재가 본격화 하자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당시 “나토가 러시아에 공격적인 발언을 하고 있다”며 자국 핵무기 운용부대에 경계 태세를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Russia tested a RS-28 Sarmat super-heavy ICBM pic.twitter.com/Gd8MR9Ui39
— OSINTtechnical (@Osinttechnical) April 20, 2022
실제 러시아 군은 핵·미사일 발사를 위한 대규모 모의 기동훈련 등을 반복적으로 전개했다. 지난 4월에는 북극해 외곽 바렌츠해 구축함에서 핀란드 인근 서북부 백해(白海) 목표물을 겨냥해 사거리 1000㎞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5월에는 모스크바 북동쪽 이바노보 주(州) 인근에서 야르스(Yars)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차량 등 100여대의 차량과 장병 1000명이 동원된 기동훈련을 진행했다. 러시아 전략로켓군에 실전배치 돼 운용 중인 야르스는 최대 사거리 1만2000㎞에 이르는 ICBM으로 대표적인 핵미사일 투발 수단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30만명 규모로 예상되는 부분 동원령 발동을 공식 선언했다.
푸틴 대통령이 부분 동원령을 명령한 것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60여년만에 처음이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군대는 1000㎞가 넘는 전선에서 서방과 군사작전을 마주하고 있다”며 “예비역들에 대한 소집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분 동원령은 기본적으로 군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징집 대상으로 한다. 과거 징집됐던 사람과 학생 신분으로 군복무 했던 사람은 제외하기로 했다. 총 25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예비 병력 가운데 30만명을 우선 징집하기로 했다.
러시아 정부는 그동안 동원령 선포는 고려 대상이 아니라며 선을 그어왔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군사작전으로 규정하며 자국민 동원 대신 모병제를 통한 계약 군인과 용병을 전선에 투입하는 것으로 필요 병력을 충원해 왔다.
이와 관련 가디언은 “푸틴 대통령의 이날 부분 동원령 결정은 러시아 전역에 충격을 안겨줬다”며 “동원 결정은 하르키우 패퇴 후 푸틴 대통령을 맹렬히 비판한 전쟁지지 블로거와 민족주의 인사들에게 환영받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BREAKING: Putin declares partial mobilization, the decree has been signed.
“Only citizens who are currently in the reserve and, above all, those who served in the Armed Forces, have certain military specialties and relevant experience, will be subject to conscription.“ pic.twitter.com/97TrW0EvWV
— Ragıp Soylu (@ragipsoylu) September 21, 2022
외신들은 최근 러시아 군의 하르키우 패퇴 이후 푸틴에게 선택지가 줄어들 경우 불리한 전황을 뒤집기 위해 전술핵 등 대량파괴무기를 사용할 위험이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친정부 성향의 평론가부터 정치인들까지 연일 푸틴 대통령과 군부를 겨냥한 비판을 쏟아내는 등 러시아 내부에서 여론 분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푸틴 대통령을 점점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있다는 평가다.
친푸틴 인사로 알려진 정치군사 전문가 빅토르 올레비치는 최근 국영 NTV의 정치 토크쇼에서 “러시아 군이 계획 대로 하르키우에서 철수해 반격을 준비한다는 말을 믿을 사람은 없다”며 “당장 전략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강대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군을 절대 이길 수 없다”고 비판했다.
러시아 정치분석가 안톤 바르바신은 최근 CNN 인터뷰에서 “그동안 푸틴 대통령은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책임회피를 많이 해왔지만, 전쟁과 외교분야에서 만큼은 책임을 회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특히 외교문제에 대해서는 실패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권위 회복을 위해 매우 급진적인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푸틴 대통령의 사임 촉구 결의안을 제출하는 형태로 압박 수위를 높여 왔다.
크세니아 토르스트롬 상트페테르부르크 세메노프스크구 대표가 제안한 푸틴 대통령의 사임 요구하는 청원에는 지방 대표 50명 이상이 서명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스몰닌스코예 구의회 의원들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 대통령을 반역죄로 기소하고, 러시아 하원에 대통령 탄핵을 요청하는 결의안도 제출했다.
이토록 러시아 정계를 비롯해 다양한 진영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크렘린궁이 경고에 나섰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비판적 관점은 법의 틀 내에서 용인된다”면서 “그러나 그것(비판)에는 적정선이 있다. 매우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