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프랑스가 오랜 협상 끝에 타결된 미국-EU(유럽연합) 간 무역합의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이번 합의가 유럽 경제에 “상당한 피해”를 줄 것이라고 경고했고, 합의 발표 직후 유로화가 약세를 보였다.
28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 AP통신에 따르면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이번 무역합의에 대해 “인플레이션이 악화할 뿐 아니라, 대서양 양측의 무역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유럽으로 수출되는 상품은 관세가 0%인데, 미국으로 수출되는 상품에는 15%가 적용된다는 점은 독일의 수출 중심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라며 “나는 합의 전부터 ‘결국 비대칭적 합의가 될 것’이라고 계속 말해왔다”고 강조했다.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총리는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결국 복종을 받아들인 암울한 날”이라며 보다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극우 정당들은 이번 합의가 EU의 취약성을 드러냈다고 봤다. 독일 대안당(AfD) 공동 대표 앨리스 바이델은 “이번 합의는 유럽 소비자와 생산자에 대한 모욕”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미국과 EU는 27일 ‘상호관세 15%’를 골자로 한 무역합의를 타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8월1일 관세 시행 전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EU에 3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해 왔는데, 이를 절반가량 낮춘 셈이다.
이번 합의를 주도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역대 최대 무역합의”라며 환영했지만, 15%라는 관세는 기존 미국이 EU에 부과하던 평균 관세보다 세 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유럽 증시는 무역합의 타결 소식에 일시적으로 상승했지만, 이후 유로존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하락세로 돌아섰다. 독일 DAX 지수는 1% 하락 마감했고, 프랑스 CAC 40 지수는 0.4% 내렸다. 자동차 업계 관련 주식은 개장 직후 상승세를 보였으나 1.8% 하락 마감했다.
올해 들어 유로화는 미국 달러 대비 12% 강세를 유지 중이었으나, 합의 타결 직후 유로화는 달러 대비 1% 이상 하락했고, 파운드 대비로도 0.7% 약세를 보였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유로존 담당 수석 부대표 잭 앨런-레이놀즈는 “이번 합의로 EU의 GDP(국내총생산)가 약 0.5%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우리가 이전에 가정했던 것보다 더 나쁜 결과”라고 분석했다.
킬 세계경제연구소의 무역 전문가 율리안 힌츠는 “이번 합의는 좋은 합의가 아니고, 회유에 가깝다”면서 “EU는 단기적으로 무역 전쟁을 피했지만, 세계무역기구(WTO)가 이끌던 다자주의 기반의 국제무역 질서를 포기함으로써 장기적으로 큰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