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팔레스타인 국가에 대한 서방 동맹국들의 승인 확산이 당장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 영토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 때 확고했던 이스라엘에 대한 서방의 지지에 큰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가자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민간인 희생이 늘고 인도주의 위기가 심화될수록 균열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주요국의 여론이 이스라엘에 대해 빠르게 비판적으로 바뀌고 각국 정치인들이 여론의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가자 인도주의 재난에 서방 여론 변화
팔레스타인 국가를 승인한 나라가 이미 140개국이 넘지만 미국과 주요 동맹국들은 아직 승인하지 않은 상태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이 체결된 뒤 주어질 보상이라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평화협상이 열릴 경우 팔레스타인에 양보를 압박할 지렛대로 삼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입장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29일 이스라엘이 가자 전쟁 종전을 위한 실질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승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의 집권 노동당 의원 130명이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을 촉구했으며 영국 국민의 45%가 승인에 찬성하고 반대는 14%에 그친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24일 오는 가을 유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공식 승인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다른 나라들도 속속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 방침을 발표하고 있다.
캐나다가 30일 팔레스타인 당국이 2026년 총선을 실시하되 하마스를 배제할 경우 팔레스타인 국가를 승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9일에는 캐나다를 포함한 15개국이 유엔에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승인하거나 승인할 의사가 있거나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내용의 서한에 서명했다.
팔레스타인 문제 2국가 해법 강조 목적
중동 국가들도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하마스가 모든 인질을 석방하고 무장을 해제하며 가자지구 통제를 포기하라고 촉구했다. 이 선언에는 일본과 멕시코도 동참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승인하는 가장 중요한 서방 국가들이다. 두 나라는 모두 핵보유국이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두 나라는 또한 식민지 시절 중동 현대사의 형성에 주요한 역할을 했다. 캐나다와 함께 이들은 팔레스타인을 승인한 최초의 주요 7개국(G7) 서방 경제 국가들이 될 것이다.
유라시아 그룹의 유럽 책임자 무즈타바 라흐만은 “프랑스와 영국의 결정이 연쇄 반응을 일으킬 것”이라며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서방국가들의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 방침은 중동 분쟁 해결책으로서 2국가 건설 방안에 힘을 실으려는 의도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정부는 2국가 건설 해법을 거부해왔다.
트럼프는 지난 29일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이 “하마스를 보상하는 셈”이라며 “나는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도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에는 아직 신중한 입장이다.
서방 주요국들이 팔레스타인 국가를 승인한다고 해도 이스라엘에 경제 제재를 하는 것이 아닌 한 당장 실질적 피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하는 계기가 되면서 실질적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이 커진다.
이미 이스라엘의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토안보부장관, 베잘렐 스모트리치 재무장관 극우 정치인들이 각국의 제재 대상이다.
이스라엘에 실질적 피해는 당장 없지만…
이스라엘은 미국과 협력하고 러시아, 중국과 안보 대화를 유지하면서 서방의 압박에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더 이상 서방의 일방적 지지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유엔 총회는 2012년 팔레스타인을 비회원국 국가로 인정했고, 2024년에는 상시 옵서버 국가로 격상시켰다. 다만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팔레스타인 당국이 유엔 회원국이 되는 것을 막아왔다.
영국과 프랑스 등 주요 서방국들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승인하면 팔레스타인 당국은 더 많은 국제기구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또 많은 나라들이 팔레스타인에 외교관을 파견하는 등 실질적 국가로 대우하게 될 수도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지난 10여 년 동안 2국가 해법을 반대하면서 유대인 정착촌을 늘리는 등으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방해해왔다.
“2국가 해법 반대는 도덕적, 전략적 오류”
이에 더해 가자지구의 일부의 합병을 추진하고 서안지구에서 정착민들의 폭력사태가 증가하며 가자 지구의 인도주의 재난이 심해지면서 서방의 우려가 빠르게 커져왔다.
데이비드 라미 영국 외교장관은 지난 29일 유엔 중동 분쟁 회의에서 “네타냐후 정부의 2국가 해법 거부는 도덕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오류”이라며 “이스라엘 국민의 이익을 해치며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평화로 가는 유일한 경로를 차단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은 팔레스타인의 양보를 압박할 지렛대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인도주의 재난을 악화시킴에 따라 오히려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지렛대가 돼가고 있다.
K-News LA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