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스타, 할리우드 스타, 인종갈등, 가정폭력, 백인 미녀와의 재혼과 이혼, 살인 혐의, 경찰 추격전, 세기의 재판, 무죄 판결. 이렇게 영화와 같은 삶을 살았던 O.J. 심슨이 지난 10일 향년 76세에 전립선암으로 사망했다.
심슨 케이스는 미국 형법 체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을 뿐만 아니라 1990년대 미국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단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사건인 심슨 사건은 특히 재판 전체가 생중계된 최초의 케이스다.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 이전인 1994년 6월부터 1995년 10월 사이 Court TV를 통해 매일 평균 550만명이 시청했고, 재판의 하이라이트인 판결 장면은 1억5000만명이 시청했다. 기네스북에 의하면 이 재판을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본 재판’ 으로 수록했다. 당시 미국인들의 25%가 재판의 전부 혹은 대부분을 시청했을 정도였다.
또한, 재판 전인 1994년 6월19일 LA에서 벌어진 도주극은 CNN과 공중파 방송국을 통해 생중계되면서 9500만명이 시청하면서 전국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심슨이 선임한 변호인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형사법 변호사들로 드림팀으로 당시 금액으로 500만달러 이상의 변호사비를 지불했을 정도로 비쌌다.
심슨 재판의 선고가 난 날에 혹시 흑인들의 영웅인 심슨이 유죄로 판명될 경우 LA에서 또 인종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어서 당시 한인들이 엄청 걱정했었다.
심슨은 1947년 샌프란시스코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USC에 편입해 풋볼스타로 큰 인기를 얻었다. 또한 LA에서 거주하면서 할리우드에 스포츠 캐스터와 영화배우, 광고모델로 활동했기 때문에 특히 LA 흑인사회에서 인종적인 편견과 차별을 딛고 성공 한 흑인의 우상으로 받아들여 졌다.
그런 심슨이 스포츠계나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전세계 뉴스의 타겟이 된 이유는 그의 백인 전처 니콜 브라운 심슨과 그녀의 애인인 론 골드먼이 1994년 6월13일 브렌트우드에 있는 니콜의 자택 외부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시체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이 재판은 과거 최고의 스포츠 스타가 인종문제와 가정폭력, 경찰의 위법 행위에 대한 논란을 촉발하며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이 ‘세기의 재판’에서 오랜 재판 끝에 형사상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미국의 엄격한 증거주의 판단 등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즉, 무죄판결을 받은 이유는 심슨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불충분했기 때문이다. 특히,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장갑과 같은 켤레의 피묻은 장갑을 심슨의 집에서 발견했고, 심슨이 재판과정에서 이 가죽장갑을 착용했지만 심슨의 손에 전부 들어가지도 않을 만큼 사이즈가 작았다.
여기에서 한인 고용주들은 단지 직원들이 모든 임금을 다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불충분 하고 정확한 타임카드와 페이스텁 그리고 제대로 문서로 된 회사 고용방침을 갖춰야 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미국은 증언보다 구체적인 증거가 있어야 민사소송에서 효율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피 묻은 왼쪽 장갑에서 심슨의 DNA가 검출됐고, 심슨의 양말에서 니콜의 DNA가 나오는 등 확보한 증거는 심슨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무죄평결을 내리면서 미 형사법 제도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인 배심원제의 불완전성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기 때문에 미국의 법제도를 이해하기에 아주 유익한 케이스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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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4년 4월 LA 조선일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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