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경선에 참패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전 대표)가 승부수를 던졌다. 경선 분수령으로 꼽히는 1차 슈퍼위크 투표 개시일인 8일 정치적 텃밭인 호남을 찾아 의원직 사퇴를 전격 선언하며 배수진을 쳤다.
승부처인 호남 경선(25~26일)을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노린 것으로 관측된다. 호남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어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사 찬스’를 누린다는 비판에도 현직을 내려 놓지 않는 것과 대비시키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이 전 대표의 의원직 사퇴 선언은 캠프의 만류에도 본인의 강한 의지로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원직 사퇴라는 배수진은 자신의 고향이자 민주당의 정치적 모태인 호남에 이 지사는 민주진영 후보로 부적절하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동시에 정권 교체에 대한 자신의 결기를 각인시키려는 포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 전 대표는 이날 광주시의회 기자실에서 광주·전남 지역 공약 발표에 앞서 “저의 모든 것을 던져 정권 재창출을 이룸으로써 민주주의와 민주당, 대한민국과 호남, 서울 종로에 제가 진 빚을 갚겠다”며 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그는 사퇴 기자회견에서 이 지사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지사의 도덕성 문제, 포퓰리즘(인기 영합주의) 공약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과 민주주의의 가치에 부끄럽지 않은 후보를 선택해달라고 호소했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도덕적이지 않아도 좋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며 “민주당과 보수 야당이 도덕성에서 공격과 방어가 역전되는 기막힌 현실도 괜찮은가”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교육, 의료, 전기, 수도 등은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공공재인데 민영화되는 것은 사회 공동체를 위해 위험하다. 요즘 한전 민영화 논의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다”며 “세금을 새로 만들거나 늘려 거둔 돈을 부자건 가난하건 똑같이 나누어 주자는 발상은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이 전 대표 의원직 사퇴는 충청권 패배 이후 전략 수정을 위해 지난 6일 긴급 소집된 의원단 대책회의에서 제안됐다. 하지만 반대하는 의원이 많아 논의가 진전되지 않다가 이 전 대표가 결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7일 기자회견에서는 네거티브 중단과 양극화 해소 전념 등 일부 전략만 공개된 바 있다.
이 전 대표 캠프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걸고 하겠다는 것이다.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차원”이라며 “만류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 전 대표가 결단했다”고 전했다.
이 전 대표 캠프에서는 민주당과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경선 행태와 불안한 이 지사에 실망한 지지층을 대거 양산해 충청권 경선의 투표율이 낮아졌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러면서 의원직 사퇴를 계기로 이런 실망층을 껴안을 수 있다면 반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눈치다.
이 전 대표 캠프에서는 이 지사가 ‘지사 찬스’에도 현직 프리미엄을 유지하는 것이 공론화되기를 기대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이 지사 측은 앞서 이상민 민주당 선거관리위원장이 지사직 사퇴를 촉구하자 “그러면 타 후보도 의원직을 사퇴하라”는 논리를 내세워 회피한 바 있다.
이 지사 캠프 핵심 관계자는 “이 지사는 도민과 한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차원에서 지사직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이 전 대표의 의원직 사퇴와는 관계가 없다.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직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대표의 의원직 사퇴가 캠프의 희망대로 충청권 패배 이후 지지층을 결집하고 실망한 지지층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정치적 상징성이 큰 지역구(종로)를 내던지는 것이 맞는가라는 비판이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김두관 의원은 지난 2012년 민주당 대선 경선 도전 당시 진정성을 보인다는 이유로 경남지사직을 중도 사퇴했다가 어렵게 확보한 영남권 교두보를 대책 없이 내줬다는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 캠프는 8일 입장문을 내어 “노무현대통령의 숨결이 배인 정치1번지 종로가 민주당원과 지지자에게 어떤 상징성을 갖는 지를 망각한 경솔한 결정”이라며 “굳이 호남을 발표 장소로 선택한 것이 호남을 지역주의의 볼모로 잡으려는 저급한 시도가 아니길 바란다”고 맹비난했다.
이 전 대표의 의원직 사퇴 선언은 불리한 경선 판세를 스스로 인정해 조직 이탈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의원직 사퇴 이후 경선에서 탈락하면 정치적 재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호남에서 배수진을 치겠다는 의지는 전달된다”면서 “그외 (호남과 선거인단의 마음을) 울리는 메시지는 보이지 않는다. 전략적 착오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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