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차기 총리를 결정하는 집권 자민당의 총재 선거가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유력한 후보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64) 전 자민당 간사장이 빠진 삼파전이 될 가능성도 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58) 행정개혁·규제개혁상,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64) 전 정조회장,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60) 전 총무상의 삼파전이다.
‘재기불능’ 피하기 위한 이시바, 고심 또 고심
유력한 총재 후보로 거론되던 이시바 전 자민당 간사장이 출마를 보류하고 있다는 보도가 현지에서 잇따르고 있다.
8일 지지통신에 따르면 이시바 전 간사장은 지난 7일 이시바파(17명) 의원들과 대응을 협의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이 출마한다면 지지하겠다는 목소리도 있는 한편, 간부 등을 중심으로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의원들도 있었다. 특히 고노 개혁상을 지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곧 대응을 결정할 전망이다. 고노 개혁상을 지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지통신은 그가 태도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총재 선거에서)패배하면 재기불능에 빠질 수 있다는 견해가 나오는 가운데 이시바파 내에는 신중론이 강하다”고 전했다.
그는 4번이나 총재 선거에 출마한 이력이 있다. 선거 때마다 유력 후보로 거론돼 왔으나 이번에는 “어떻게 처신해야 총재 후보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상황을 주시하며 활로를 찾고 있으나 막다른 길에 다다른 느낌이 감돈다”고 지적했다.
고노도 아베, 아소 눈치…이시바 지지 거부할까
8일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고노 개혁상은 자신의 지지를 검토하고 있는 이시바 전 간사장에 대한 대응으로 복잡한 입장에 처했다.
고노 개혁상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여론의 인기가 높다. 이시바 전 간사장도 그와 여론조사 1, 2위를 다투는 후보다. 그와 협력할 경우 당원표, 젊은 국회의원 표를 기대할 수 있다.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소속 국회의원 1명당 1표씩 주어지는 383표와 전국 당원·당우 투표로 배분이 결정되는 ‘당원표’ 383표로 결정된다. 총 766표다. 국회의원 표와 여론의 영향을 받는 당원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한다.
고노 개혁상과 이시바 전 간사장의 협력을 기대하는 이시바파 중견 의원은 “고노와 이시바가 만나면 최강이다.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론의 인기가 좋은 두 사람이 만나 총선에 나서면 자민당이 대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그러나 고노 개혁상에게는 복잡한 이야기다. 그는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이시바 전 간사장이 자신을 지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데 대해 질문받자 “이시바씨에게 물어봐라. 이시바씨의 이야기를 나에게 물어도 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시바 전 간사장과 손을 잡으면 아베 전 총리는 물론 자신이 속한 아소파(53명)의 수장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과의 관계가 악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아소 내각에서 ‘아소 교체’에 가담했던 인물이다. 아베 2차 내각에서는 격렬하게 정권 비판을 하고 나선 ‘반(反)아베파’다. 갈등은 뿌리 깊다.
만일 고노 개혁상이 이시바 전 간사장과 지나치게 접근할 경우 아소 부총리와 호소다파에 영향력을 가진 아베 전 총리가 ‘반 이시바’ 깃발 아래 협력해 고노 개혁상 승리 저지에 주력할 수도 있다.
각료 가운데 한 명은 신문에 “고노 개혁상과 이시바 전 간사장이 협력하면 나쁜 화학 반응을 일으킨다”고 우려했다.
고노 개혁상은 이번 주 정식으로 출마 표명에 나설 전망이다. 이시바 전 간사장을 외면할 경우, 이시바 전 간사장 자신이 직접 출마할 가능성도 있다.
아베 지원 업고…급부상한 다카이치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60) 전 총무상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지원을 업고 총재 후보로서 급부상하고 있다.
그는 8일 국회 내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입후보한다고 정식으로 발표했다.
여성 의원의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는 2008년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현 도쿄(東京)도지사 이후 처음이다. 고이케 지사는 현재 자민당을 탈당한 상황이다.
중의원 의원 8선으로 무파벌인 다카이치 전 총무상은 정치 신조가 가까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지원을 받고 있다. 아베 정권에서 자민당 정조회장과 총무상을 지냈다.
과거 소속 파벌이자 아베 전 총리의 출신 파벌인 호소다파가 지지 기반이 된다.
다카이치 전 총무상은 지난 7일 밤 자신을 지원하고 있는 아베 전 총리의 자택을 방문해 의견을 교환했다. 아베 전 총리는 “총재 선거를 이겨내자”고 말했다고 산케이 신문은 전했다.
그는 총리 취임 후에도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国) 신사 참배할 의향을 밝히는 보수 세력으로부터 표를 확보하기 위해 힘을 쓰고 있다.
지난 3일에는 BS 후지 방송에 출연해 “직책에 관계 없이 지금까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해왔다. 결코 외교 문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아베 전 총리는 총리 재임 시절인 2013년 12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가 한국, 중국은 물론 미국으로부터도 실망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후 참배 대신 공물을 보냈다.
지난해 총리 사임 후부터는 빈번히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며 ‘우익’ 색을 거침없이 내보이고 있다. 다카이치 전 총무상도 이와 결이 같아 보인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는 집권당의 총재가 총리가 된다. 만일 다카이치 총무상이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면 일본 첫 여성 총리가 탄생하게 된다.
여전한 아베 영향력…기시다, 아베노믹스 들고 아베 ‘눈치’
기시다 전 정조회장은 아베 전 총리의 눈치를 보며 톤 다운에 나섰다.
문제는 지난 2일 BS TBS 방송에서 벌어졌다. 총재 선거 출마를 표명한 그는 아베 내각의 정치 스캔들 모리토모(森友) 학원 문제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때까지 설명을 계속하는 일이 정부의 자세로서 중요하다”며 재조사 입장을 시사했다.
그러자 지지통신은 지난 7일 아베 전 총리가 다카이치 전 총무상을 지원하는 배경에는 기시다 전 정조회장을 견제하는 목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아베 전 총리가 모리토모 학원 문제가 다시 도마로 오르는 일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기시다 전 정조회장이 총리가 된 후 모리토모 문제 설명의 필요성을 호소하면 자신에게 화살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에 기시다 전 정조회장은 같은 날인 7일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모리토모 학원 문제에 대해 “재조사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을 바꿨다.
8일에는 기자회견에서 경제 정책을 발표하고 아베 전 총리가 추진했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의 3개 핵심 대담한 금융정책·기동적인 재정정책·성장전략을 견지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베노믹스로 성장한 열매를 분배하지 않으면 격차가 확대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대 파벌 호소다파에 영향력을 가진 아베 전 총리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다.
기시다파(46명)의 수장인 그는 여론의 지지 기반이 약하다. 국회의원 표도 다른 파벌에서 끌어와야 당선될 수 있다. 이에 유튜브 등을 통한 홍보와 국회의원들에 대한 지지 호소를 서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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