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러의 기축통화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달러값이 11% 가까이 추락하며 52년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하면서다. 향후 달러의 안전자산 지위가 약해지며 달러값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시각이 나오는 가운데 대체통화가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달러지수(DXY)는 올해 상반기 동안 10.8% 하락했다. 올해 초 110선에 육박했던 달러지수는 6월 말에는 96.76까지 떨어졌다. 상반기 중 달러가 이처럼 큰 폭으로 약세를 보인 것은 1973년 금본위제 폐지 이후 52년 만에 처음이다.
달러지수는 유로화와 일본 엔화, 영국 파운드, 캐나다 달러, 스웨덴 크로나, 스위스 프랑 등 6개국 통화대비 달러의 상대적 가치다. 100보다 낮으면 상대적으로 달러 약세를, 높으면 달러 강세를 의미한다.
달러 값은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와 함께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고립주의적 무역정책과 감세에 따른 국가 부채 증가 등 재정 건전성 우려에 트럼프 관세 불확실성까지 달러의 지위를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파월 의장 해임 요구 등 연준의 통화정책 독립성 훼손까지 더해졌다. 신용평가가 무디스가 지난 5월 재정적자를 이유로 미국의 신용등급을 한단계 강등한 점도 기축통화로 인식됐던 달러의 위상이 더욱 흔들리게 된 계기가 됐다. 여기에 미국의 경기 균열 우려도 추가됐다.
한 외신의 경제학자 49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0% 이상이 5~10년 내 달러의 안전자산 역할이 약해질 것으로 답했다. 이는 그대로 달러의 추가 가치 하락 전망으로 이어진다. 7월 들어 달러지수의 소폭 반등에 대해서도 기술적 반등으로 하방 압력이 여전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해외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지난달 달러지수가 향후 1년 내로 9% 가량 추가 하락해 91선 수준까지 내려갈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이보다 앞서 5월에는 JP모건이 달러가 중기적인 관점에서 10~20% 하락 여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이런 가운데 한은은 최근 ‘미 자산시장 평가 및 글로벌 투자자금 재편 가능성 점검’ 보고서를 통해 “미국 달러의 안전자산 지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지만 달러를 대체할 통화가 없다”는 진단을 내놨다. 아울러 장기적으로 미국으로의 자금 유입세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미국의 경제적 위상과 달러의 글로벌 지배력을 고려할 때 대체통화나 자산을 찾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다. 최근 미국에서 채권 자금이 유출되고, 가상화폐와 금 등으로 자금 유입이 확대되고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안전자산으로서의 달러 지위를 되찾을 것이란 의견이다.
보고서는 미국의 채권시장 규모가 압도적인데다가 글로벌 외환보유액과 국제결제량, 외환거래량 등에 있어 달러 사용 비중이 다른 국가를 크게 상회한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으로의 자금 유입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대로 달러에 힘을 싣게 된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 미국채권의 글로벌 비중은 40.2%며, 달러 사용 비중은 57.8%, 국제결제량은 49.7%에 달한다. 대체자산으로 평가되는 유로화는 AAA급 국채가 부족하고, 위안화는 낮은 시장 개방도, 금은 보관과 유통의 어려움이 있다. 암호화폐는 높은 가치변동성을 문제로 꼽았다.
한은 관계자는 “장기적 관점에서 달러를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달러 자산의 지위가 약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글로벌 투자자금의 투자처가 다변화되고는 있으나 앞으로도 미국으로의 자금 유입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