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를 거슬러 보면 인류의 삶을 완전히 혁신시킨 큰 전환점들이 있었다. 불의 발견에서 시작해서 언어가 등장하고, 문자가 생겨나고, 종교와 철학이 탄생했을 때, 과학으로 세상을 설명하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인쇄술이 등장했을 때 그 변화는 너무 커서 사람들은 세상을 다시 이해해야 했다.
그 중 인쇄술의 등장은 정말 엄청난 사건이었다. 수백 년 동안이나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읽고 독점하던 책이 대량으로 찍혀 나오자 일반인들에게도 지식을 널리 공유하게 되면서 신을 중심으로 하던 시대를 끝내고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게 된 거다. 이 후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으로 줄줄이 이어지고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과 사회가 움직이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다.
챗GPT를 만든 ‘오픈 AI’의 CEO샘 올트먼은 2년 전 의회 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AI는 인류가 인쇄술 이후 처음 맞는 거대한 문명의 변화다.’ 이 말은 인쇄술처럼 AI도 지식의 생산과 유통 방식을 혁신해 우리 사회를 통째로 바꿀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었다.
처음의 AI는 검색 엔진과 비슷했다. 하지만 거대언어모델(LLM)이 나오면서 기계가 말을 이해하고, 상황을 파악하고, 문맥을 따라오고, 스스로 글을 쓰고, 답을 찾고, 예상하고, 상상까지 하고 아이디어도 낸다. 즉, AI는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상상력의 바깥에 놓인 또 하나의 정신처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제 AI는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바로 ‘에이전트 AI’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작업을 실행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로봇과 결합해 ‘피지컬 AI’ 시대가 열리면, 기계는 책상 위뿐 아니라 물리 세계에서도 인간의 손발이 될 거다.

이 기술이 세상을 얼마나 깊게 파고들었는지는 영국의 콜린스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 ‘바이브 코딩(Vibe coding)’이 잘 보여준다. ‘이런 느낌으로 만들어 줘’하고 지시하면 AI가 알아서 자신의 분위기와 이미지, 정체성을 다시 짜주는 것을 말한다.
예전 사람들이 인쇄술로 지식을 복제했다면, 오늘의 사람들은 AI로 자기 자신을 복제하고 변주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언제나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있는 법. 그 그림자는 더욱 짙다. 요즘 대학가에는 AI를 둘러싼 부정행위가 늘고, 세대 간의 기술 간극은 깊은 골짜기처럼 더 벌어지고 있다.
그러는가 하면 믿음도 점차 옅어진다. 사진을 보고도 ‘저게 진짜일까?’,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으면 ‘AI 아닐까?’하면서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안개 속처럼 흐릿해지고 있다. 신뢰라는 토대가 삐걱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혼란은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과거에도 인간은 문자의 등장 앞에서 두려워했고, 인쇄술이 나오자 ‘세상이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도 비슷한 공포가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결국 그 모든 변화를 감수하며 자신의 삶 속으로 녹여냈다.
AI챗 GPT가 처음 공개된 것이 불과 3년 전 11월이었다. 그럼에도 챗 GPT의 아버지 샘 올트먼의 예언처럼 인류 역사는 이미 ‘AI 이전’과 ‘AI 이후’로 나뉘고 있을 정도다. 그리고 마치 세 살배기 아이가 문득 말을 배우더니 어른을 멈춰 서게하고 지시하듯 오늘의 AI가 바로 그 지점에 서 있는 거다.
비록 세 살배기 AI는 아직 서툴러 보이지만, 너무 빨리 자라고 있으며 우리에게 숙제를 던져 준다. ‘기술이 이렇게 빠르게 커질 때, 우리가 어떤 인간으로 남아야 하는가?’
아마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르네상스가 다시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 두 번째 인쇄술의 시대를 건너는 중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