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보면 단순한 예술 설치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훨씬 자세히 들여다보면, 산호세 다운타운 어도비 본사 건물 꼭대기에서 회전하는 원형 구조물은 풀어야 할 암호였다.
3년 동안 반복되던 이 암호는 마침내 해독됐다. 어도비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브라이언 빈센트가 올해 봄 회전하는 원들의 움직임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분석한 끝에, 이 암호가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의 명화 ‘비너스의 탄생(Birth of Venus)’의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세마포어(semaphore)는 시각적 신호를 이용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깃발을 흔들거나 불빛 또는 점멸등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폴 리비어가 영국군의 진격을 알리기 위해 등불을 사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산호세 세마포어의 경우 원형 구조물 4개가 각각 4가지 위치를 취할 수 있어 모두 256가지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 퍼즐은 2006년 처음 공개됐으며, 일정한 순서로 반복해서 메시지를 전송해 왔다. 원형 구조물은 7.2초마다 새로운 위치로 바뀐다.

이번 암호는 2023년 5월부터 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누군가가 그 의미를 풀어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작품을 만든 예술가 벤 루빈은 “나 자신조차 풀 수 없는 암호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20년 전 처음 공개된 산호세 세마포어는 미국 작가 토머스 핀천의 소설 ‘제49호 품목의 경매(The Crying of Lot 49)’ 전문을 전송했다. 두 번째 세마포어는 음성 파일을 전송했는데, 닐 암스트롱의 유명한 말인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라는 문장이었다.
세 번째인 이번 퍼즐은 르네상스 시대 명화의 일부를 전송하는 시각적 매체를 활용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해답은 매우 복잡하다. 실제로 누군가가 암호를 풀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쉽게 설명하면 회전하는 원들은 디지털 이미지의 각 픽셀 색상 정보를 암호 형태로 전송하고 있었다. 빈센트는 수년 동안 네 개의 원이 회전하는 패턴을 분석한 끝에 마침내 해답을 찾아냈다. 암호는 ‘비너스의 탄생’ 속 작은 장미 한 송이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빈센트는 “이번 퍼즐의 난이도는 거의 완벽했다고 생각한다”며 “어떤 면에서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고, 누군가가 풀기까지 몇 년이나 걸렸다”고 말했다.
암호가 해독된 만큼 이제 새로운 퍼즐이 등장할 차례다. 어도비는 산호세 본사 건물에 네 번째 세마포어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음 암호를 가장 먼저 푸는 사람에게는 2년간 사용할 수 있는 어도비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 구독권과 함께 최고의 명예상이 주어질 예정이다.
박성철 기자(sungparkknews@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