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에서 월드컵 예선이 열리면 영국에서만 네 개의 국가대표팀이 등장한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는 1863년 잉글랜드 축구협회(FA) 창설을 시작으로 각각 독자적인 협회를 꾸려온, FIFA보다도 역사가 오래된 조직들이다. 훗날 FIFA가 ‘한 나라 한 팀’ 원칙을 세울 때도 이 역사적 권리만은 예외로 인정받았다.
헌데 이 오래된 자부심이 특정 상대와 부딪히기 시작한 건 1966년이었다. 잉글랜드에서 열린 월드컵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 주장이 격렬한 항의 끝에 퇴장당했고, 이를 지켜본 잉글랜드 감독은 상대 선수들을 ‘동물들’이라 불렀다. 이 발언은 아르헨티나 신문 1면을 장식했고, 두 나라 사이에는 지워지지 않을 감정의 골이 생겼다.
앙금이 채 가라앉기도 전, 남미 대륙 동쪽의 작은 섬이 두 나라를 다시 충돌시켰다. 영국은 19세기부터 이 섬을 실효 지배하며 ‘포클랜드’라 불렀고, 아르헨티나는 자국 영토라 주장하며 ‘말비나스’라 불렀다.
1976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아르헨티나 군부는 ‘말비나스를 되찾자’는 구호 아래 포클랜드를 점령했다. 그러나 영국 대처 총리는 즉각 대규모 함대를 파견해 74일간의 전쟁 끝에 승리했다. 이 패배로 아르헨티나 군부 정권은 붕괴했고 국민들은 깊은 굴욕을 떠안았다.

전쟁이 끝난 지 불과 4년 후, 두 나라는 이번엔 총이 아니라 공으로 다시 마주쳤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 단 4분 사이에 축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두 골이 터졌다.
먼저 마라도나가 점프하며 머리가 아닌 손으로 밀어넣은 공을 심판이 발견하지 못했고 골로 인정됐다. 게름칙한 골. 그러나 몇 분 뒤, 그는 자기 진영에서부터 잉글랜드 선수 다섯 명을 차례로 제치고 골을 성공시켰다. 앞선 반칙 논란을 지워버릴 만큼 압도적인 장면이었다. 훗날 그는 ‘조금은 내 머리, 조금은 신의 손이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결국 경기는 아르헨티나의 승리로 끝났고, 그 대회 우승까지 차지했다. 이는 아르헨티나 국민에게 ‘전쟁에서는 졌지만 축구에서는 이겼다’는 상징이 되었다. 축구장 위의 승리가 전쟁의 굴욕을 되갚는 또 다른 방식이 된 셈이다.
이후에도 두 나라가 마주칠 때마다 경기장은 조용히 법정이 되었다. 1998년에는 베컴이 퇴장당한 경기에서 아르헨티나가 승부차기로 승리했고, 2002년에는 베컴이 페널티킥 결승골을 넣으며 잉글랜드가 설욕했다. 그리고 그제, 2026년 월드컵 준결승에서 24년 만에 다시 맞붙어 아르헨티나가 영국을 무릎꿇렸다.
두 나라에서 유독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건 축구에 부여한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잉글랜드에게 축구는 세상에 준 선물이자, 규칙을 만들고 협회를 세워 세계에 퍼뜨렸다는 종주국의 자부심이었고, 아르헨티나에게는 정치, 경제, 군사로 이기지 못한 상대를 경기장에서만은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래서 이 대결은 늘 비대칭적이었다. 한쪽엔 지켜야 할 위신이, 다른 쪽엔 증명해야 할 존재가 있던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번 그라운드에 섰던 선수들 대부분이 그 전쟁도, 신의 손도 겪지 않은 세대라는 점이다. 그들에게 포클랜드는 교과서 속 이야기이고, 신의 손은 유튜브 영상일 뿐 그런 서사는 더 이상 선수 개인의 기억 속에 있지 않다.
그런데도 킥오프 전 공기는 여전히 팽팽하다. 유니폼과 국가(國歌), 함성 속에 대물림된 무게를 그들은 역사를 기억해서가 아니라 역사가 된 무대 위에 서 있기에 짊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 경기는 ’90분짜리 역사 수업’으로 불린다. 아니 ‘숙제’라는 말이 더 맞는 말일게다. 골이 들어갈 때마다 두 나라는 훨씬 오래된 그 무언가를 다시 확인하면서 이긴 쪽은 빚을 갚았다 믿고, 진 쪽은 물려줄 유산을 재다짐하며 4년 뒤를 고대한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다고 믿었던 제국과 그 제국의 그림자 아래서 축구공 하나로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려 했던 남미의 나라. 그 끝없는 경쟁의 역사를 보면 두 나라는 전쟁을 끝낸 뒤에도 평화조약 대신 승부차기로 매듭짓는 숙명적 관계라고 해야 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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