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의 머리카락은 단순히 머리를 보호하기위한 수단을 넘어 신분과 종교,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언어였다. 어떻게 꾸미며, 무엇으로 어떻게 묶느냐로 한 사람이 속한 시대와 계급, 심지어 종교를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남자는 결혼과 함께 상투를 틀었고, 그 상투를 고정하는 동곳의 재질이 곧 신분을 말해주었다. 청나라의 변발은 정반대로 정치적 복종의 증표였다. ‘머리를 남기려면 머리카락을 자르고, 머리카락을 남기려면 목을 내놓으라’는 구호 아래 강요된 것이었다.
반면 시크교도는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터번 속에 묶어 신앙을 표현했고, 힌두 고행자들 역시 뭉친 머리로 세속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불교 승려들은 정반대의 길, 완전한 삭발로 같은 목적지에 닿았다. 모두 방향은 달랐지만 말하려는 것은 같았다.
고대 로마의 베스타 신녀들은 여섯 가닥의 특수한 매듭으로 머리를 묶었는데, 이는 신부의 헤어스타일이기도 했다. 풀어헤친 머리는 반대로 미혼이나 애도를 뜻했다. 지금도 정통 유대교 여성들이 결혼 후 가발이나 가리개로 머리를 감싸는 관습 역시 같은 맥락의 연장선으로 머리를 묶는다는 것은 곧 ‘나는 매인 존재다’라는 선언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가 늘 낭만적이지는 아니었다. 성경 속 압살롬은 긴 머리가 나뭇가지에 걸려 매달린 채 죽었고, 산업혁명기 방직공장에서는 머리를 제대로 묶지 못한 여성 노동자들의 두피가 회전하는 기계에 뜯겨나가는 사고가 잦았다. 이 참혹한 반복이 오늘날 헤어넷 착용 규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오래된 이야기들은 이제 각 개인의 개성과 스타일이라는 현대적인 방식으로 되살아났다. 이는 스포츠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단지 다른 것은 머리 묶기가 신앙이나 신분이 아니라 규칙의 하나가 된 것이다.
1999년 테니스 호주오픈에서는 비너스 윌리엄스의 머리 구슬이 계속 바닥에 떨어지자 심판이 규정을 꺼내 들었고, NFL은 2003년 리키 윌리엄스가 드레드락 머리 때문에 끌려 넘어진 사건 이후 ‘머리카락도 유니폼의 일부’라는 ‘리키 룰’을 만들어 머리채 태클을 아예 합법화해버렸다.
축구에서는 이 이야기가 두 얼굴로 나타난다. 하나는 종교와 규정의 오랜 충돌이다. FIFA는 히잡을 금지했다가 이란 여자 대표팀이 올림픽 예선을 통째로 포기하는 사건을 겪은 뒤 안전한 새 디자인으로 금지를 풀었던 것.
다른 하나는 지난해 클럽월드컵 결승에서 상대 머리를 잡아 퇴장당하는 일이 벌어졌는가하면 불과 6일 뒤 여자 유로 8강에서도 같은 이유로 레드카드가 나왔다. 머리채 잡기는 규칙에 명시된 반칙이 아니라 심판의 재량에 맡겨진 회색지대였던 것이 VAR(비디오판독) 덕분에 비로소 발견되기 시작했다.
헌데 바로 이 무대에서, 가장 눈에 띈 머리는 반칙이 아니라 스타일링이었다. 올해 2026년 월드컵에서 노르웨이의 엘링 홀란은 경기마다 유니폼 색에 맞춰 머리끈을 바꿔 묶는 것으로 화제였다. 그 머리끈 이름이 노르웨이 브랜드로 알려진 ‘끄네끼(KKNEKKI)’다.
헌데 이 단어는 놀랍게도 한국어다. ‘끈’을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 1987년 경남 함양에서 허리 부상을 입은 축구선수 출신 창업자가 ‘머리를 묶어도 아프지 않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실용적 이유로 시작한 이 한국 브랜드가 2015년 노르웨이 기업에 인수돼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했는데 홀란은 애용에 그치지 않고 직접 투자자가 되었다.
조선의 동곳이 재질 하나로 신분을 드러냈던 것이 지금은 머리끈의 색깔과 브랜드가 선수의 시그니처 스타일링이자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 진화한 것이다. 다만 그 언어가 이제는 계급이 아니라 개인 브랜딩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경상도 사투리로 그저 ‘끈’이라 불리던 물건이 대서양을 건너 노르웨이 브랜드가 되고, 다시 월드컵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한국으로 돌아온 이 여정은 머리를 묶는다는 오래된 몸짓이 세계를 잇는 끈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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