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미국의 가장 오래된 동맹국인 태국군은 올해 미국과 코브라 골드(Cobra Gold) 합동 군사연습을 실시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실시되는 가장 큰 군사훈련 중 하나다.
이보다 몇 달 전 태국군은 중국 인민군과 셰어드 데스티니(Shared Destiny) 평화유지 훈련을 가졌고 지난 2020년에는 자국 사관학교 생도들이 모스크바 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기로 러시아와 합의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냉전시대로 돌아간다는 지적이 일부 있으나 미국, 러시아, 중국을 제외한 각국의 지정학적 역할이 달라지면서 지난 25년 동안의 국제질서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24일 보도했다.
전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들이 2차대전 이후 냉전시기와 달리 특정국가의 편에 서는 편가리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달 있었던 유엔 총회의 러시아 인권위원회 축출 표결에서 결의안이 채택됐지만 태국··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멕시코·싱가포르 등 10여개 나라들이 기권했다.
과거 강대국들이 대리전쟁을 벌이던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각지의 나라들이 독립을 강화함에 따라 제국주의 시대 시대 소멸 직후의 비동맹 움직임이 되살아나고 있다. 작은 나라들도 더이상 하나의 이데올로기나 경제적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 길을 가는 추세가 뚜렷해졌다.
미 워싱턴의 국립전쟁대학 안보전문가 자카리 아부자는 “의심할 여지 없이 동남아 국가들은 새로운 냉전에 끌려들어가거나 강대국 힘겨루기에 억지로 가담할 생각이 없다. 코끼리가 싸우면 잔디가 망가진다는 동남아 속담을 따르는 셈”이라고 말했다. 냉전시대 동맹체제가 “동맹을 맺지 않은 나라들을 극도의 가난과 저개발에 빠트린 것이 원인”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냉전시대의 승리자인 미국이 과거의 전통 동맹국 중 일부가 주권 민주국가를 공격한 러시아를 비난하는데 동참하도록 하지 못하고 있다. 2011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리비아 공격과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서방에 대한 불신이 커진 때문이다. 두 사건은 이 지역 국가들이 몇 년 동안이나 정치적 어려움을 겪도록 만들었다.
외교위원회 아프리카 전문가 에베네제르 오바다레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서방이 이들을 무시하고 어린애 취급했다고 느낀다. 주권과 영토의 존엄을 강조해온 말과 달리 행동한 것도 비난 대상”이라고 말했다.
한때 반공을 내세우는 미국의 지지를 받아 독재자가 집권했던 인도네시아의 경우 민주화됐지만 올해 열리는 G20 회의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참석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는 또 러시아의 인권위 축출 유엔 총회 투표에서 기권했다.
톰 렘봉 전 인도네시아 무역장관은 “우리 정부가 70년내 최대의 지정학적 대지진을 무시하는 전략을 택한 것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다른 미 동맹국들도 자국이 미국을 배제한 결정을 내리는 경향을 보여왔다. 중국이 지난해 전세계에 백신을 공급한 반면 미국은 백신을 독점하는 것으로 비쳐졌다.
그 이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시절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스스로 구축해온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철수했다. 이에 따라 이 협정에 가담했던 베트남과 같은 나라들이 미국에 또 한번 배신당했다고 느꼈다.
미국의 오랜 동맹국인 멕시코도 중립을 강조하면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바라도르 대통령이 러시아 제재를 거부했다.
라이스대학교 베이커공공정책연구소 토니 페이언은 “멕시코가 중립을 주장하지만 중립적이 아니다. 멕시코가 미국의 눈을 찌르고 있다”고 말했다.
남미와 카리브해국가 주재 미국 대사의 3분의 1 가량이 공석으로 남아 있다. 특히 최대 경제대국인 브라질과 미주기구(OAS) 대사가 공석이다. 이와 관련 콜럼비아 칼리의 이세시 대학교 블라디미르 루빈스키 교수는 “많은 라틴 국가들이 미국이 그들을 버렸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과거의 동맹국들이 예전처럼 자동적으로 러시아를 지지하진 않는다. 독재국가로서 동질감 말고는 러시아가 더이상 이데올로기적 맹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또 소련시절의 지정학적 영향력을 유지할 경제력도 없다.
러시아의 강력한 남미 동맹국 베네수엘라가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미국 고위급 대표단을 받아들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동부 분리주의 지역의 독립 지지선언을 처음 지지한 나라인 니카라과가 이후 지지를 자제하고 있다.
지난 3월 유엔 총회 표결에서 쿠바가 러시아를 지지하는 대신 기권했다. 반면 니카라과는 러시아의 인권위 축출에 반대표를 던졌다.
네바다대학교 쿠바 전문가 레나타 켈러는 “쿠바가 침공을 찬성하지도, 비난하지도 않으면서 평화를 주장하는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의 변화가 가장 주목된다. 지난 3월 표결에서 절반 가까운 나라들이 기권한 것이다.
사미아 술루후 하산 대통령은 “그들이 왜 전쟁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누가 먼저 공격했는지 “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
태국의 경우 미국, 러시아, 중국 군대와 함께 훈련하기로 한 결정이나 각 나라들로부터 무기를 사는 결정은 오래도록 강대국들 사이에 균형잡기를 해온 역사에 따른 것이다. 태국은 기민한 외교로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은 나라다. 베트남전 당시 발진 기지였던 태국이 미국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은 8년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프라유트 찬-오차 총리의 경험 때문이기도 하다.
태국 나레수안대학교 국제관계학 강사 폴 체임버스는 “태국이 민주국가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독재국가다. 이런 나라는 러시아와 같은 동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간다도 마찬가지다. 미국으로부터 수십억달러의 지원을 받는 우간다는 지역 군사 상황에서 서방의 핵심 지원국이다. 그러나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 정부는 인권침해로 인해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비판을 받아왔다. 무세베니 대통령은 서방의 리비아와 이라크 공격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반응했다. 우간다 지상군 사령관인 아들이 “(비맥인) 인류의 다수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입장을 지지한다”고 트윗했다.
다른 10여개 국가와 마찬가지로 우간다는 중국과 교역량이 가장 많기 때문에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비록 중국이 약속과 달리 경제 지원을 이행하지 않는 일이 적지 않지만 다른 강대국들에 경제적으로 의존하던 나라들이 이탈하도록 만들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 최대 미군기지인 캠프 레모니어가 있는 지부티와 같은 나라도 입장이 변해왔다. 몇년 전 이스마일 오마르 구엘레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중국 정부가 지부티에 최초의 해외 군사기지를 구축했다. 구엘레 대통령은 또 중국으로부터 항구 및 자유무역지대와 철도 건설 자금도 받았다.
남아공 국제관계연구소 고부스 반 스타덴은 중국과 관계 강화로 아프리카 국가들이 “대체 투자자, 대체 시장 및 새로운 발전 기회”를 갖게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다 다극화된 상황일지라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파장은 널리 퍼지고 있다.
연료, 식량, 비료 등 국제가격 인상이 아프라키와 아시아 각국을 힘들게 하고 있다. 심각한 가뭄으로 이미 큰 타격을 받은 아프리카 동부지역은 최소 1300만명이 극심한 기아에 빠져 있다.
시리아, 베네수엘라, 아프가니스탄, 남수단, 미얀마 로힝야족 등 유럽 이외 지역 국가의 난민들은 우크라이나 난민과 달리 환영받지 못한다. 한정된 자원을 마련하느라 분투중인 지원단체들은 세계에서 가장 취약한 지역에 대한 기부 피로감으로 인해 빚어질 수 있는 재난을 경고하고 있다.
하산 탄자니아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대해 “전세계가 두 나라 전쟁 때문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