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서, 값싼 러시아산 에너지에 의존했던 유럽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13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유럽 내 산업용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서, 유럽 제조업체의 세계 시장 경쟁력이 저해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 화학제품, 비료, 철강 등 에너지 집약 제조업체들은 지난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부터 위기가 고조되자 압박을 받아왔다.
일부 업체들은 에너지 비용이 유럽보다 훨씬 낮은 미국, 중동 등 다른 지역과 경쟁에서 밀려 공장을 폐쇄했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미국보다 3배가량 높다.
마르코 멘싱크 유럽화학산업협회(CEFIC) 국장은 “전반적으로 유럽의 가장 큰 우려는 수입 증가와 수출 감소”라고 전했다.
제조업체들은 에너지원과 생산 원료로 천연가스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천연가스로 전기 요금을 책정하는 만큼 가스 가격 인상 시 이중고를 안게 된다. 비료 생산에 사용되는 암모니아는 유럽에서 원료로 사용되는 가스 70%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러시아는 유럽연합(EU) 천연가스 40%를 공급했으며,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올해 유럽 산업 생산과 전반적인 경제 성장은 둔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EU 집행위원회 경제 전문가들은 독일 경제가 2분기 높은 에너지 가격 압박으로 위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EU 최대 경제국인 독일은 러시아 천연가스 최대 수입국으로, 에너지 비용 상승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구매력이 저하돼 성장 부진을 만회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업체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방과 갈등 끝에 천연가스 공급을 전면 중단할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 PJSC는 불가리아, 핀란드, 폴란드가 가스 수입대금을 루블화로 지급하라는 러시아 정부 요구를 거부하자 가스 공급을 중단한 상태다.
여기에 EU가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줄이기로 하면서 유럽 업체들은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잃을 위기에 놓여 있다. 풍력, 태양에너지 등 화석 연료를 대체할 에너지는 상업화까지 수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며, 막대한 투자도 필요하다.
해외에서 암모니아를 수입할 수 없는 비료 제조업체들은 공장을 폐쇄하고 있다. 영국 최대 비료 생산업체인 CF 인더스트리 홀딩스는 지난해 암모니아를 생산하지 않은 공장을 영구 폐쇄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한 상태다.
철강업체들은 가스와 전기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생산을 줄이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지난 3월엔 스페인에서 전기 가격이 급등하면서 현지 철강업체들이 생산량을 줄이거나 폐업했다.
업계는 러시아의 에너지 수송 중단 시 대체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유럽 당국에 로비하고 있다. 러시아가 독일에 가스 공급을 중단할 경우 당국은 가정과 병원, 경찰서, 군 시설 등 필수 영역에 우선권을 주게 된다.
야코프 한센 유럽비료협회 국장은 “푸틴 대통령과 함께하는 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며 “가스 없인 어떤 비료도 생산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