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이 아직 6개월이나 남아 있지만, 아마 올해 ‘탑건:매버릭’보다 관객을 더 미치게 하는 영화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탑건:매버릭’은 속도로, 규모로, 힘으로 미치게 한다. 짜릿해서 쿨해서 낭만적이어서 미친다. 그들의 사랑도, 우정도, 열정도 미친 것 같다. 물론 ‘탑건:매버릭’을 완전무결한 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탑건:매버릭’은 영화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만큼은 완전무결하게 해낸다. 관객을 스크린 깊숙이 빠트려 그 가상의 세계를 진짜라고 믿게 하는 것. ‘탑건:매버릭’은 36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그 임무를 완수하며 전설이 된다. 이 전설의 시작과 함께 떠오른 24살의 할리우드 신성 톰 크루즈는 이제는 환갑의 슈퍼스타가 돼 이 전설을 마무리하며 신화가 된다.
피트 미첼, 콜사인명 ‘매버릭'(톰 크루즈)은 동기들이 해군 제독이 됐는데도 대령에서 진급하지 않은 채 전역을 앞두고 있다. 한 때는 전설의 조종사였지만, 이제는 잊혀진 용사가 돼 세월을 보내던 그에게 갑작스러운 명령이 떨어진다. 탑건으로 복귀하라는 것. 성공 확률이 희박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젊은 조종사를 교육하는 게 그의 미션. 매버릭은 직접 작전에 나서고 싶다고 하지만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교관 역할에 충실하기로 한다. 그리고 교육생 명단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한다. 36년 전 F-14를 함께 몰던 파트너이자 친구인 ‘구스’ 닉 브래드쇼의 아들 브래들리. 매버릭은 브래들리를 아들처럼 생각하지만 그는 매버릭이 아버지를 죽게 했다고 생각해 원망하고 있다. 그런 두 사람은 이제 스승과 제자가 돼 함께 작전에 나서야 한다.
우선 속편은 전작의 불명예를 청산한다. ‘탑건’은 전 세계에서 3억5700만 달러(약 4620억원)를 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했으나 비평 면에서는 꽤나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베트남 전쟁에서 패한 이후 땅에 떨어진 미군의 위상을 살리고, 냉전 시대 미군의 힘을 알리기 위해 기획된 홍보용 영화라는 게 ‘탑건’에 대한 당시 언론의 대체적인 평가였다(미군은 F-14 전투기 포함 각종 군 장비·시설을 총동원했다). ‘탑건:매버릭’은 이런 시대적 배경과 무관한 상태에서 ‘탑건’을 부활시켜 전작의 단점은 모두 제거하고 캐릭터·스토리·감성 등 장점만 계승한 뒤 확장한다. 여기에 1980년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기술력으로 차원이 다른 전투기 액션을 선보이며 최상급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한다. 그렇게 ‘탑건’은 ‘탑건:매버릭’으로 완성된다.
‘탑건:매버릭’에는 균형 잡힌 신구 조화로 구현한 레트로(Retro) 스타일의 정수가 있다. 조지프 코신스키 감독은 전작의 삽입곡인 케니 로긴스의 ‘데인저 존'(Danger Zone), 벌린의 ‘테이크 마이 브레스 어웨이'(Take My Breathe Away), 제리 리 루이스의 ‘그레이트 볼스 오브 파이어'(Greay Balls of Fire) 등을 살뜰히 챙겨 36년 뒤 벌어지는 새로운 이야기에 이물감 없이 섞어낸다. 이 음악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해 1980년대 감성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영화에는 잘 쓰이지 않는 연출이 종종 발견되는데, 이 방식이 촌스럽기보다는 클래식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오히려 장점으로 보인다. 이 경향은 액션 장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 영화 액션 시퀀스 대부분이 36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컴퓨터그래픽이미지(CGI)를 최소화하고 F-18 전투기를 실제로 띄워 촬영하는 아날로그적인 형태로 만들어졌다. 그러면서 동시에 30여년 전에는 없었던 각종 촬영 장비와 방식을 동원함으로써 이 영화가 명백히 2022년에 나온 영화라는 걸 기술적으로 보여준다.
‘탑건:매버릭’에는 ‘탑건’ 하면 떠오르는 장면을 빠짐 없이 오마주하며 향수를 불러낸다. 오프닝 시퀀스의 드라마틱한 전투기 착륙 장면부터 전작과 흡사하다. 매버릭이 가와사키닌자 오토바이를 타고 활주로를 질주하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매버릭이 전투기를 거꾸로 뒤집어 상대 조종사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장면 역시 또 한 번 볼 수 있다. 아버지 구스(닉)가 피아노 치는 장면은 아들 루스터(브래들리)가 피아노 치는 장면이 돼 다시 나오고, 작전을 완수한 뒤 조종사들이 함께 모여 환호하는 장면 역시 36년 전과 똑같다. 전작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흘러간 세월과 함께 잠시 감상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작품은 매버릭의 최대 라이벌이자 절친한 동료였던 ‘아이스맨’ 톰 카진스키(발 킬머)를 등장시켜 전작에 대한 예우를 다한다. 이 아련함과 애틋함은 전편과 속편이 영화 역사상 가장 긴 36년에 걸쳐 나온 ‘탑건’ 시리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탑건:매버릭’의 하이라이트는 영화 후반부에 펼쳐지는 전투기 액션 시퀀스다. 이 작품의 액션 장면은 친절하고 치밀하게 그리고 영리하게 구성돼 있어 짜릿함을 극대화한다. 영화는 매버릭과 조종사들이 어떤 작전을 수행하게 되는지 수차례 설명해주고, 이들이 작전 성공을 위해 연습하는 장면을 실전 액션 장면보다 훨씬 길게 보여준다. 이는 영화 끝 부분에 이르러 정신없이 펼쳐질 전투기 공방이 어떤 양상으로 진행되는 것인지 관객이 명확하게 알게 해준다. 이를 통해 특정 액션 장면에서 무슨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몰라서 긴장감을 느끼지 못하는 일을 방지한다. 여기에 더해 파일럿들이 연습 도중 실패하는 장면을 반복해서 집어넣은 뒤 연습보다 더 어려운 실전 상황을 맞닥뜨리게 해 긴장감을 최고조로 높인다. 또 매버릭과 루스터의 엇갈린 관계와 서로에게 품고 있는 감정을 전체 액션 시퀀스에 녹여내 액션의 쾌감과 함께 감동도 함께 느끼게 한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탑건:매버릭’이 톰 크루즈의 영화라는 것이다. 매버릭이 곧 크루즈이고, 크루즈가 곧 매버릭이다. 매버릭은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무모한 도전을 즐기기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누구도 하지 못한 성공을 이뤄내기도 했다. 36년 전에도 그랬고, 36년 후에도 그랬다. 크루즈 역시 4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렇게 연기했다. 그는 비행기 날개를 붙잡고 날아올랐고, 수백미터 높이 고층 빌딩 위를 뛰어 내려왔으며, 높은 절벽에 매달렸고, 깊은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번엔 전투기를 직접 몰며 8배 중력을 견뎠다. 그리고 그 일을 20대에 시작해 환갑이 된 지금까지 하고 있다. 그러니 매버릭을 연기한 건 크루즈의 운명이었을 것이다. 이번에 크루즈는 ‘탑건’과 ‘탑건:매버릭’ 사이의 36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는 대체 불가능의 스턴트를 보여준다. 그는 그렇게 신화가 된다.
영화 초반부, 매버릭이 최신형 전투기를 한계 속도인 마하10을 넘겨서 몰며 폭주하는 장면은 매버릭이 어떤 캐릭터인지 설명해주는 장면이기도 하고 크루즈가 어떤 배우인지를 보여주는 시퀀스 같기도 하다. 상관이 매버릭에게 말한다. “앞으로 무인 전투기의 시대가 올 것이다.” 그러자 매버릭은 “조종사를 대체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크루즈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스턴트맨이 해도 되고, CGI 기술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배우가 직접 연기하는 걸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다”고. 그리고 모든 걸 직접 다 하는 건 크루즈 외엔 없다. 36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역시나 가장 위대한 조종사는 루스터도, 행맨도, 페이백도, 피닉스도 아닌 매버릭인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