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좌파를 자처하는 미 뉴욕타임스(NYT)의 경제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이 3일(현지시간) 칼럼에서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의 정책 실패에 진보주의자들이 고소한 느낌을 가져도 좋을 것같다고 비꼬았다.
크루그먼은 영국 금융시장의 혼란이 트러스 총리의 경제 해법에 대한 직접적 대응이라기보다 현실을 무시하고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못한 정책을 제시한 탓에 시장의 신뢰를 잃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트러스 총리가 예산 적자를 늘리고 물가상승을 촉발하는 정책을 제시해 시장 금리가 폭등하고 파운드화 가치가 하락했다는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통화정책의 실패가 아닌 정부의 지적, 도덕적 신뢰도의 문제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트러스 총리와 당국자들은 예산 평가 없이 정책을 발표해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이와 관련 영국의 싱크탱크인 레졸루션 재단(Resolution Foundation)은 향후 5년 동안 예산적자가 146억파운드에 달할 것으로 평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총 국내총생산(GDP)의 1%에 달하는 액수다. 작지 않지만 크지도 않은 액수다. 특히 감세와 최고소득세율 인하 방안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중에서도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 왜 시장은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했을까? 트러스 총리와 쿼지 콰탱 재무장관이 최고 소득세율 인하가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신뢰받지 못하는 주장으로 자신들의 정책을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들의 능력과 현실 인식이 의심받았다.
트러스 정책이 시기적으로 맞지 않은 것도 문제다. 현재 영국과 유럽의 서민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영향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푸틴의 서방 천연가스 공급 차단은 1970년대 오일 쇼크보다 더 큰 경제적 충격이다. 각국 정부들이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야기된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면서 일종의 경제 전쟁을 치르는 와중이다. 이런 시기라면 각국 정부들은 자국민 단결을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다.
이런 시기에 에너지 가격 상승의 고통이 덜한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늘려 고통당하는 사람은 소수가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내지 않고 오히려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줄이겠다고 한 것이다. 의료보험 혜택 축소 등 복지 혜택 감소로 화가나 있고 세금 인상을 바라는 영국인들에겐 매우 해로운 메시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사면서 제대로 통치하기는 어렵다.
트러스 정책중에 신뢰를 떨어트려 시장을 자극한 요인이 하나 더 있다. 영국 정부 채권을 상당액 보유한 영국의 연금기금이 금리가 오르고 채권가격이 하락하자 채권을 매각해 위험을 분산시키려 한 것이다. 금리가 갑자기 올라 연금기금의 채권 매각 주문이 성사되지 못했고 이 점이 다시 금리 인상을 촉발했다. 영란은행의 긴급 개입으로 피해가 줄었지만 이런 사건으로 시장의 불안감은 커졌다.
전세계적으로 금리가 오르면서 또 한차례 금융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예상이 늘고 있다. 영국의 정부 채권 폭락이 과도한 것이었다고 해도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사람들이 불안해지는 건 막을 방법이 없다.
다시 트러스 문제로 돌아가서 신임 총리의 정책에 시장이 격렬하게 반응한 것은 돈의 문제만이 아닌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지도자는 현실적이고 공정하다는 인식을 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환상속에 살면서 사회적 연대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지도자를 목격했다. 트러스 총리가 입은 상처를 회복하는 건 단기간에는 어려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