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달 블라디미르 푸틴과 정상회담에서 “현대는 전쟁의 시대가 아니다. 평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언급한 것은 미국에게는 놀랍고 반가운 일이었다. 전쟁 시작 이래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들을 향해 푸틴에 보다 강경한 대처를 요구해온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반갑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이처럼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국내·외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중심 과제다.
워싱턴포스트(WP)는11일 울이 다가오고 전쟁이 더 치열해짐에 따라 일부 동맹국들이 경제적으로 거센 역풍을 맞게 되고 국내에서도 공화당 지지자들이 우크라이나에 수백억달러를 지원하는 것에 회의적 태도를 나타내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 확보 노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첫 시금석이 12일 유엔 총회의 대러 비난 결의안 투표다. 미 정부는 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의 비동맹 국가들이 중립적 입장에서 벗어나 러시아 비난에 동참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러시아의 키이우 등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 미사일 공격이 이런 노력을 한층 강화시켰다.
미 정부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합병 규탄 결의에 찬성한 193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최소 100개국 이상이 이번의 결의안에 찬성할 것을 기대한다. 지난 3월 미국이 제안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비난 결의안에는 141개국이 찬성했다. 이번 결의안 찬성 국가들이 당시보다 적으면 미국으로선 패패다.
한편 우크라이나에 수백억달러를 지원하는 것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지가 약화되는 조짐도 있다.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해 의회를 장악하면 이같은 분열은 한층 커질 것이다.
퓨리서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패배를 극도로 또는 크게 우려하는 미국인들이 지난 3월 응답자의 55%에서 지난달 38%로 줄었다. 공화당 지지자들 가운데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과도하게 지원한다고 답한 사람이 32%에 달했으며 이는 지난 3월보다 9% 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미국은 러시아와 오래도록 깊은 군사적, 정치적 관계를 맺어온 인도가 유엔 총회 결의안에 찬성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푸틴의 민간인 미사일 공격을 계기로 남아공 등 다른 나라들은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국제위기그룹(ICS)의 리처드 고완은 “미사일 공격이 우크라이나가 피해자임을 국제사회에 상기시킬 것이다. 최근 유엔 논의에서 이 점이 부각되지 못하고 많은 나라들이 모호한 방식으로라도 휴전해야 한다고 촉구해왔다”고 말했다. “최근 우크라이나군의 선전으로 도와줄 필요성이 줄었다는 인상을 가졌던 각국이 상황을 새롭게 인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시아 각국들은 전쟁이 유발한 석유와 식품 가격 상승으로 인한 피해를 더 크게 입었다. 이에 따라 이들을 설득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같은 어려움이 미국의 대러 제재가 아닌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생한 것임을 누누이 강조해왔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황은 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케르치 대교 폭파사건이 우크라이나 소행이라며 대대적인 미사일 공격을 감행한 러시아의 행보는 전쟁을 크게 악화시키는 것이다. 이보다 전부터도 전투가 한층 치열해져 왔다. 미국은 겨울에 접어들면 전쟁이 소강상태가 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모두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심감이 커지면서 휴전 가능성이 멀어지고 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4개 지역 합병 선언과 30만명을 징집하는 부분 동원령이 이를 뒷받침한다.
지금까지 미 의회는 양당이 일치되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수백억달러 군사지원을 지지해왔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미국이 해외 다른 나라의 전쟁에 그토록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느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주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기구(OPEC)+의 감산 결정은 유가를 다시 올려 미국인들의 삶을 한층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한 고위당국자는 “미국인들과 의회의 지지를 유지하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유럽도 겨울을 앞두고 높은 에너지가로 고통받으면서 우크라이나 지지가 줄어들 위험성이 있다. 전쟁 발발 이후 바이든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2,3주 간격으로 대화해왔으나 두사람 사이도 항상 좋지만은 않다.
전쟁 초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미 지원하기 시작한 미국 및 서방을 상대로 첨단 무기 지원 확대와 대러 제재 강화를 거듭 공개적으로 촉구했었다.
바이든은 젤렌스키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사적으로는 젤렌스키가 지원에 감사하지 않고 충분하지 않다고 거듭 강조하면 의회를 설득하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물론 지금도 공개적으로는 우크라이나에 지원을 계속할 것이냐는 질문에 “필요한 만큼 언제까지라도”라고 답하고 있다.
그러나 미 당국자들은 사적으로 러시아든 우크라이나든 전쟁에서 결정적으로 승리할 수 없을 것으로 말한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휴전하도록 압박할 생각은 없다면서 전쟁이 언제 어떻게 끝날 지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달렸다고 말한다.
한 고위 국무부 당국자는 “그건 우크라이나가 결정할 일이다. 우리가 할일은 우크라이나가 협상 테이블에 나서기로 할 때까지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능력을 최대로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최근 전쟁에서 승리하고 있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 합병을 선언한 마당에 협상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합병 선언이 협상에 대한 사망선고라고 경고해왔으며 지난 주 협상을 배제하는 선언을 했다. 그는 푸틴이 제거돼야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협상을 거부하면 군사작전을 끝내지 않겠다고 말한다.
우크라이나 여당 지도자로 러시아와 협상을 주도해왔던 다비드 아라하미아 의원은 “푸틴이 합병으로 전쟁을 영구화하는 바이러스를 투입했다. 우크라이나는 협상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푸틴이 합병을 강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대비책을 구상해왔다. 영국, 독일,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푸틴이 지난달 21일 발표한 부분 동원령은 합병의 전조였다. 유엔 총회 연설을 준비하던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의 발언을 지켜본 뒤 연설문을 수정했다. 푸틴이 핵위협을 사실상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사기 주민투표를 한다고 강력히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