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66일째인 16일(현지시간) 폴란드 동부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에 떨어진 미사일 폭발 사건 초기 조사 결과를 두고 서방과 우크라이나가 이견을 보였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러시아 미사일 공격을 막기 위한 우크라이나군의 방공 미사일의 오폭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 반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이 발사한 미사일이라고 부인했다.
AP통신·CNN 등에 따르면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주재한 북대서양이사회(NAC)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초기 분석 결과 러시아의 순항미사일을 막기 위한 우크라이나의 방공 미사일 가능성이 크다고 잠정 결론 냈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이번 사건은 러시아의 순항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우크라이나 영토를 방어하기 위해 발사된 우크라이나의 방공미사일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우크라이나의 잘못이 아니며, 러시아에 궁극적인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바르샤바 국가안보국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전날 사건은 폴란드에 대한 의도적 공격이라는 근거가 없으며, 러시아가 발사했다는 근거도 없다”며 “우크라이나의 방공 미사일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사일은 과거 제조된 러시아산 S-300 미사일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현장 점검 결과 떨어진 미사일에서 남은 연료가 터져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옛 소련 무기 체계를 따르고 있는 우크라이나가 운용 중인 방공시스템 S-300의 미사일이 러시아의 순항미사일 요격에 실패한 결과 폴란드 영토 내에 떨어졌을 수 있다는 게 폴란드와 나토의 공통된 분석이다.
미사일이 떨어진 폴란드 동부 접경지역 루블린주(州) 프셰보도프 마을은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 체르보노흐라드 국경과 6㎞ 거리에 있다. 우크라이나 국경에 배치된 S-300 방공시스템이 르비우를 향하던 러시아군의 순항미사일 요격에 실패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전날 “완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예비 정보에 따르면 탄도 궤도상 (미사일이) 러시아영토에서 쏜 것 같지 않다”며 조심스레 우크라이나 방공미사일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러시아는 전날 수도 키이우를 비롯해 북부 하르키우·지토미르·르비우 등 최소 12개 지역의 15개 에너지 시설에 100여 발의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다.
제7차 우크라이나방위연락그룹(UDCG) 회의를 주재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도 러시아의 소행이 아닌 우크라이나의 방공 미사일이라는 폴란드·나토 초기 분석에 무게를 실었다.
오스틴 장관은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내놨던 초기 평가와 모순되는 점을 보지 못했다”며 “불운하게도 이번 폭발은 폴란드에 떨어진 우크라이나 방공 미사일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첨단 지대공미사일 방어시스템(NASAMS)을 언급하며 “NASAMS는 순항미사일과 같은 러시아의 미사일 요격에 100% 성공률을 보였다”고 말했다. 미국은 이달 초 NASAMS 시스템 2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가 기존 운용 중인 옛 소련제 S-300 방공시스템의 부정확한 요격률과 비교해 미국의 NASAMS의 정확도가 뛰어나다는 점을 부각하는 것으로 이번 사건과 미국 지원 무기 사이의 개연성이 없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향후 제기될 수 있는 미국의 책임론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포석으로도 해석된다.
이처럼 서방이 우크라이나 방어 미사일의 오폭 가능성을 제기한 것과 달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발사한 미사일의 증거가 있다며 폴란드 폭발 현장에 대한 접근과 공동조사를 통한 정확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올렉시 다닐로우 국가안보국방위원회 서기는 이날 트위터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공동 조사를 지지한다”면서 “우리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우리가 갖고 있는 러시아 흔적들의 증거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파트너 국가들이 어떤 근거로 이번 사건의 미사일이 우크라이나의 방공 미사일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는지에 대한 정보를 받기를 기대한다”며 “미사일 폭발 현장에 대한 즉각적인 접근을 허가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이날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막을 내린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디지털 전환을 주제로 한 두 번째 세션의 화상 연설에서 폴란드 미사일 폭발은 러시아 군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러시아의 미사일이 어제 이웃국가인 폴란드 영토를 타격했다. (러시아는) 빠른 답변이 있어야 한다”며 “러시아는 테러리스트고, 우리는 이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키고 있다. 그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와는 별도로 우크라이나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총참모부와 공군사령부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았다. 나는 그들을 믿을 수밖에 없다”며 “군 보고 내용의 신빙성을 바탕으로 러시아가 쏜 미사일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와는 별개로 우크라이나군이 탈환 작전 중인 남부 헤르손 전선에서는 드니프로 강(江) 동안으로 방어선을 옮긴 러시아군의 추가 후퇴 움직임이 포착됐다.
러시아 측이 임명한 올레슈키 군정청장은 이날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우크라이나 군이 노바 카호우카를 향해 집중 공격을 퍼붓고 있다”며 “더이상 안전하지 못하다는 판단에 따라 행정 당국은 도시를 떠나 러시아 영토의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다”고 밝혔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러시아군은 매번 전략적·전술적으로 실패했다.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주) 점령에 초점을 맞춘 이후 헤르손·자포리자까지 병합했지만 지켜내지 못했다”며 “러시아는 매번 실패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