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가 로베르토 품에 안겨 묻는다. ‘키스할 때 코는 어느 쪽에 두어야 하죠?’ 잉그리드 버그먼과 게리 쿠퍼가 주연한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에서 널리 회자된 유명한 대사다. 스페인 내전(1936~1939)을 배경으로 쓴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장편소설의 이 제목은 영국 시인 존 던(John Donne)의 시(詩)에서 따온 것이다.
존 던이 살았던 17세기 영국 런던에서는 마을에서 사람이 죽으면 교회의 종을 치는 풍습이 있었다. 헌데 종소리가 들리면 귀족들은 하인을 시켜 누가 죽었는지 알아보게 했다. 이런 귀족들에게 존 던은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서 울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시(詩)를 보자. ‘세상 어느 누구도 외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어라/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또한 대양의 한 부분이어라/흙 한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나가면/유럽 땅은 그만큼 작아지며/ (…) /‘어느 누군가의 죽음도 나를 줄어들게 하니/나도 인류 속에 포함된 존재이기 때문이리라/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이를 알아보기 위해/사람을 보내지 말라/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기에’
그는 이 시를 통해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나가면 그만큼 땅이 작아지듯 마찬가지로 어느 누군가의 죽음은 나의 일부를 잃는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은 나와 연관되어 있으므로 그 속에 나도 포함되어 있는 일부이고 그것들 또한 나의 일부이다. 그러니 누군가의 죽음은 나의 일부를 잃는 것이다. 결국 죽은 자를 위한 종소리는 내 일부를 잃은 나를 위한 종소리이기도 하다는 걸 말한 것이다. 한마디로 타자(他者)와 내가 별개의 존재가 아니란 얘기다.
해서 존 던은 종(鐘)이 이 세상 어디에서 울리던 그 어느 누구만을 위해서 울리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맞닿아 있는 것인 만큼 귀족들에게 ‘당신도 죽음에서 예외일 수 없으니 남의 일로 여기지 말라’고 일갈한 것일터.
그런 존 던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제목을 차용해서 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은 그가 미(美)신문연맹의 종군기자로 스페인 내전에 뛰어들어 전장을 누비며 싸웠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나온 소설이다. 총소리와 폭격소리는 마치 종소리 같고 언제나 죽음이 뒤따르고 있음을 알리는 전쟁의 실상이 잘 표현된 소설이다.
헤밍웨이뿐만 아니라 조지 오웰, 앙투안 생텍쥐페리, 앙드레 말로 등 많은 지식인과 젊은이들이 자진해서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스페인 내전의 포화 속에서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원을 받은 프랑코의 파시즘에 맞서 싸웠다.
그 자원자들의 수가 53개국 3,5000여 명에 달했는데 이 때 그들이 세계의 지성과 양심을 일깨우며 결성한 민간 의용군이 바로 ‘국제여단(國際旅團)’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주인공 로베르토도 국제여단 소속이었다.
8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국제여단이 다시 소환되고 있다. 러시아의 무력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참전하겠다는 각국 지원자들이 줄을 잇고 있으면서다. 우크라이나가 군사동맹이 없는데다가 미국과 유럽,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군사 지원을 하지 않자 세계 의용군이 나선 것이다.
이는 존 던이 그의 시를 통해 시사한대로 비록 ‘다른 나라의 아픔일지라도 이는 곧 나의 아픔’이란 인식에 따라 총소리와 폭격소리가 나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울리는 종소리로 여기고 뛰어드는 인류애의 실현을 보여주는 모습들이다.
조지 오웰 또한 스페인 내전 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카탈루냐 찬가’에서 왜 의용군에 입대했느냐고 묻는다면 ‘파시즘과 싸우기 위해서’지만 무엇을 위하여 싸우느냐고 묻는다면 ’공동의 품위를 위해서’라고 대답했을 것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 모두가 평화를 갈망하고 지키내려는 숭고한 인류애의 희생정신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해서 이문재 시인은 ‘종소리를 더 멀리 보내기 위하여/종은 더 아파야 한다’고 했는가 보다.